| 대한민국에서 ‘지방 사람’으로 산다는 것 / 이정록 |
| 2021년 05월 25일(화) 19: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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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딴 나라로 느껴지는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일까. 사람 때문이다. ‘도시의 승리’를 쓴 하버드대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는 “진정한 도시의 힘은 사람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도시에 부와 권력이 모여 도시 성장을 지속시키는 요체(要諦)는 사람이라는 주장이다. 부자, 권력을 가진 자, 유능한 엘리트,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사람 등이 많이 모이는 도시는 당연히 승리를 구가(謳歌)하지 않겠는가.
서울이 대표적 모델이다. 조선 개국 이후 지금까지 628년 동안 수도 기능을 하면서 서울은 사람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수도라는 본질적 속성 때문에 권력과 부를 쫓는 사람들이 모였다.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자신의 권력과 부와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려고 서울에 더 많은 사람과 재화를 모이게 만들었다. 공간 집중화와 누적화 결과가 지금의 ‘서울 공화국’이다.
박정희 대통령 이후 역대 정부는 서울 비대화와 수도권 집중을 억제하려는 노력을 했다. 균형 발전을 국정 주요 과제로 채택하고,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성장 격차를 줄이기 위한 여러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서울 집중화 현상은 꺾이지 않았다. 서울 비대화란 물결은 수도권으로 확대됐다. 그 결과 ‘수도권 공화국’이란 더 큰 공룡이 출현했다. 블랙홀 규모와 범위가 더 커진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 집중 현상은 억제할 수 없는가? 그렇다. 비교 우위와 경쟁력 있는 특정 공간으로 집중화하는 경향은 세계적 메가트랜드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경제 활동에 필요한 인프라가 완벽하다. 권력 교통 정보 통신 경제 인재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구축된 인프라가 승수 효과를 만들어내고 이는 또 다른 집중을 부른다. 그 결과 공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됐다.
대표적 사례가 집값이다. KB국민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4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11억1천123만원이다. 6개 광역시 평균(3억5천99만원)보다 3.2배 많고, 광주(3억755만원)의 3.6배다. 주택 평균 매매 가격도 큰 차이가 난다. 서울이 8억2천753만원인데 비해 6개 광역시는 3억714만원, 광주는 2억8천742만원이다. 전세 가격도 마찬가지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 가격은 6억1천4만원이고, 6대 광역시는 2억3천384만원이다.
서울과 지방 간 집값 격차는 대한민국에 신(新)계급 구조를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 보통 사람에게 주택은 개인 자산의 전부다. 때문에 서울 사람은 지방 사람보다 자산 소득이 월등히 많다. 자산 소득과 가처분 소득이 비례 관계라고 가정할 때, 사는 곳에 따라 부자(富者)와 빈자(貧者)가 결정되는 새로운 계급 구조가 자리를 잡게 됐다. 서울 사람 ‘1등 국민’ 지방 사람 ‘2등 국민’ 말이다.
서울과 지방 간 집값 격차는 인구 이동에 결정적 장애물이다. 서울 진입이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방 사람이 집을 팔아 서울에서 주택을 살 수 없다. 전셋집조차 구하기 힘들다. 설령 지방 출신 청년이 서울에서 일자리를 잡아도 서울에 사는 것은 여의치 않다.
필자가 서울에 가면 괜히 울화가 치미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필자는 요즘 학생들에게 졸업 후 지방에서 일자리를 찾고 광주에 살라고 권한다. “졸업 후 광주에서 일자리를 찾으라, 공무원이면 최고다. 주변에 지방대 출신이 많아 학벌 차별도 덜하다. 서울보다 월급이 적어도 생활하고 결혼하는데 전혀 문제없다. 지방에서 편하게 사는 것도 현실적 대안이다”고.
사실 모든 사람이 서울에 살 필요는 없다. 지방 출신이면 지방대를 졸업하고 지방에서 일자리를 잡아도 된다. 지방 출신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고 자녀들을 지방대에 보내도 괜찮다. 지방대를 졸업한 자녀가 부모 거주지와 가까운 지방에서 일자리를 얻으면 최고다. 이런 선순환이 이뤄지면 지방 사람이 굳이 서울에 가 살 필요가 없다. 그런데 지방에 형성된 선순환 구조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인구 유출과 고령화와 저출산화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지방 사람’으로 사는 것은 어렵지 않다. ‘2등 국민’과 ‘가난한 계급’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작금의 지방 상황들, 인구와 재화 유출, 고령화, 저출산화 등은 숙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조차 어렵게 만든다. 대한민국에서 ‘지방 사람’ 어떻게 살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