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몇 마디 - 김종 시인

2021년 06월 07일(월) 19:33

▲시 ‘장미꽃집 백구’는 하얀 털을 가진 너무 흔한 개이자 개 이름이기도 하다. 장미꽃집에 얹혀사는 백구는 자유로운 몸이 아니다. 목줄에 묶여 자유가 억압당한 백구는 어쩌면 밥그릇으로 표현된 직장에 목줄이 묶인 현대인의 표상으로도 보인다. ‘짓무르다’는 ‘헐고 상해서 문드러지다’ 이다. 햇살은 세상 만물을 살리는 에너지의 근원이지만 한편으로는 헐고 상해서 문드러지게 하는 독성도 있다. 밥그릇인 직장도 밥이 되기도 하지만 직장인을 헐고 상하게 하는 노역과 갈등 또한 존재한다. 자유를 갈망하며 그리움을 뱉어내는 백구가 화자의 자화상 같기도 하다. “물기 맺힌 콧망울에/꽃잎 나비되어 앉는다”는 화자와 막걸리 한 잔 기울이고 싶다.

▲시 ‘산란山蘭’은 난 한 촉이 쑥 가슴 속으로 뿌리를 내리는 것만 같다. 대원군이 난을 잘 쳤다지만 이 나라 선비치고 난 한 줄기 휘리릭 날려보지 않은 붓끝이 있으랴. 우리에게 난은 분에서의 난보다 화선지 위에서의 난이 더 익숙하다. 그래서 시적화자도 “붓끝으로 뻗힌 자태”라고 하지 않았을까?

“지난 발길 세워놓고 /그린 정 머물게 한” “녹빛향”에 이르러서는 가히 절창이라 해도 될 만큼 난의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시를 읽으며 나도 휘리릭 난 한 줄기 허공에 날린다. 녹빛향이 허공 속에서 달빛처럼 스며들고 코로나에 찌든 머리를 청아하게 깨워준다.

▲시 ‘철모 속에 핀 꽃’은 938고지 피의 능선에 올라선 화자의 감회와 핏빛 통곡이 읽힌다.

민족의 비극인 6·25는 생각부터 아득해진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다 같은 민족이니 어느 목숨인들 소중하지 않을까.

열흘 동안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낸 동부전선의 한 고지이니 패랭이꽃마저 희생자들의 피를 빨아 핏빛으로 통곡하는 피의 능선에 서서 녹슨 철모를 바라보는 화자의 감정은 얼마나 북받쳐 올랐을까.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외로운 깊은 산골”이라고 표현한 화자의 마음에서 희생자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읽히고 무릎 꿇고 사죄하고픈 마음 또한 간절해진다.

▲수필 ‘모정의 할미꽃’은 할미꽃에 비유해서 화자의 어머니를 그려낸 뛰어난 작품이다. “험한 세상 홀로 헤쳐 나온 삶의 의지는 할미꽃 뿌리의 곧고 깊게 뻗음의 닮음이요, 험난한 세파에 행여 어린 자식들 다칠세라 노심초사 마음조이며 지켜 주신 은덕 또한 한방에서 갖가지 질병을 치유해주는 할미꽃 뿌리의 약성만 못했겠는가! 그런 삶이 쌓이는 동안 당신 가슴속엔 검붉게 맺힌 한이 서리고 허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위 당긴 활처럼 휘어지셨으리라.”는 절창을 뽑아냈다. “당신의 묘비(문패) 옆에 새긴 우리 삼 남매의 이름만 보듬어 안고 저승의 할미꽃 뿌리 되어 곧고 깊게 쉬고만 계신” 어머니는 언제까지나 우리들의 그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