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16)

한 밤중에도 나지막하게 빗방울 소리가 들려오네

2021년 06월 15일(화) 19:19
春興(춘흥)
포은 정몽주

봄비가 소록소록 기척 없이 내리더니
한 밤중 나지막이 비 소리는 들리는데
눈 녹아 시냇물 불고 새싹 꽤나 돋으리.
春雨細不滴 夜中微有聲
춘우세부적 야중미유성
雪盡南溪漲 草芽多少生
설진남계창 초아다소생

한 밤 중에 내린 비는 비바람을 몰지 않고 소리 없이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언제 내렸는가 싶을 정도로 추적추적 내렸던 비는 온 대지를 폭신하게 적신다. 겨우내 잠자던 새싹들이 잠을 잤느냐는 듯이 기지개 쭉 펴면서 양 손을 번쩍 들고 움을 트려고 요동친다. 버드나무 이제 지지 않을 듯이 가지마다 초록색을 칠할 태세를 갖출 모양이다. ‘눈이 녹아 시냇물은 많이 불어났고, 봄비를 맞고 새싹이 꽤나 돋았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한 밤중에도 나지막하게 빗방울 소리가 들려오네’(春興)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로 고려 말의 문신이자 학자다. 고려에 성리학이 처음 들어올 당시, 탁월하게 이해하고 소화한 뛰어난 학자다. 명나라나 외국과의 외교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한 외교가로도 알려진다. 태종 이방원과 같이 단심가 한 수는 고려를 지킨 절신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봄비가 소록소록 기척도 없이 내리더니 / 한 밤중에도 나지막하게 빗방울 소리가 들려오네 // 눈이 녹아 시냇물은 많이 불어났고 / 봄비를 맞고 새싹이 꽤나 돋았으리라]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봄에 일어나는 흥취]로 번역된다. 봄은 생명약동을 약속이나 하듯이 여기저기서 소곤소곤하는가 하면 두런두런한다. 어서 제가 먼저 싹을 틔우겠다고 고개를 들이 밀고 있다. 움츠렸던 어깨를 쭉쭉 펴면서 기지개 켜는 모습도 상상된다. 들판 멀리에서는 아지랑이가 아롱거리면서 봄 처녀를 모셔 올 태세를 갖춘다. 시냇가 버드나무는 옷 베를 짜려는 태세다.

시인의 춘흥은 가슴 설레는 울렁거림으로 마음을 걷잡을 수 없는 흥분에 감싸였음이 시상의 주머니에 쏘옥 고개를 내미는 형국이다. 봄비가 소록소록 기척도 없이 내리더니, 한 밤중 나지막이 빗방울 소리가 추적추적 들려온다고 했다. 춘흥의 감격에 싸여 있는 상황임에도 봄비까지 내려 봄의 소묘를 그려볼 모양이다.

화자는 전구인 전경에서 소리 없이 내리는 봄비란 세례를 받고 온 세상이 발칵 뒤집혀질 듯한 환상에 젖었음을 상상하더니 후정에서는 질펀한 봄 그림을 그렸다. 눈이 녹아 시냇물은 많이 불어났고, 봄비를 소복하게 맞고 새싹이 꽤나 돋았으리란 봄의 상상을 한다. 한 폭 그림이란 시심의 발동 앞에서는 더 긴 말을 잇지는 못했으리라.

※한자와 어구

春雨: 봄비. 細: 가늘다. 不滴: 소리가 없다. 夜中: 한 밤중에. 微: 가늘게. 有聲: 소리가 있었다. 소리를 내면서 내렸다. // 雪盡: 눈이 녹다. 南溪: 남쪽 시내. 漲: (시냇물이) 불어나다. 草芽: 풀 싹. 多少: 얼마간. 다소. 生: 생겨나다. 혹은 ‘생겨났으리라’라는 가정이나 상상이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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