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몇 마디 - 김종 시인

2021년 06월 21일(월) 19:02

▲시 ‘시간’은 시적화자의 내적 다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화자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뜨는 태양”을 보며 보이지 않는 만물의 운용법칙을 깨닫는다. 그래서 하루도 쉬지 않는 태양을 보고 두 주먹을 불끈 쥐듯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홀연히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가져 보곤 한다. 그러다 보니 비록 실패하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삶의 현장에서 겸허함을 배우며 “다시 시작할 초유의 힘”을 얻게 된다. “어둠을 뚫고 음지에서/치솟는 달처럼” 시적화자는 조용히 손을 모으고 인내하며 다시 도전하는 것이다. 시를 읽으며 필자는 자신도 모르게 시적화자를 응원하고 있었다. 이겨라, 이겨라 운동회처럼 엉덩이를 반쯤 쳐들고 양손을 들어 올리고 함께 달리고 싶어졌던 것이다.

▲시 ‘정경’은 호수와 작은 새와 구름과 풀꽃과 아기염소와 엄마염소와 하늘과 순한 눈빛의 짐승들과 노을과 풀벌레와 달빛과 산과 별들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노래하고 있다. 조연이 필요 없이 모두가 주연이다. 주연과 조연들이 아니라 주연들만 등장하는 정경이라는 의미이다. 시적화자는 눈에 보이는 모든 대상들을 호명하면서 마치 비단을 짜 올리듯 아름다운 피륙 같은 시 한 편을 짜낸 것이다. 시의 진행이 이 같았으니 독자들은 숨이 멎을 것 같은 아름다운 정경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시 ‘악수’는 우리가 흔하게 그리고 너무 익숙하게 타인을 만났을 때 하는 동작인 악수에 관한 시적화자의 소회를 노래한다. “손바닥과 손바닥을 맞대는 순간/그리움/따뜻한 정을 건너 받네”는 화자는 어쩌면 악수 예찬론자라는 생각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단지 손 한 번 꽉 잡았다 놓았을 뿐인데 무언의 ‘친분을 쌓고 정을 나누게’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타인의 손을 잡아본 사람이면 알 것이다. 악수를 할 때 서로에게 전해지는 체온과 촉감을 통해 “여러 모양으로 살아온” 상대의 직업과 건강까지도 유추해낼 수 있다는 것을. 언제 또 만날지 “기약은 없지만” 타인의 손이 따뜻하게 보이는 것은 그만큼 시적화자의 마음의 시선이 따뜻하기 때문이리라.

▲수필 ‘생존의 법칙’은 아포리즘적인 흐름으로 조간조간 건네는 화자의 언설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발길에 차이고 밟힘을 견뎌”내고 환한 꽃을 피운 채송화와 대숲에서 대나무와 경쟁하지 않고 “상대를 보호하는 것으로 나를 지키는 생존전략을 가진 소나무”를 통해 “조직이라는 문화에 뿌리내려야 하는 우리의 생존방식과도 일맥상통하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처럼 보도블록 위에 피어난 채송화와 맹종죽림의 소나무를 보면서 화자는 생의 비밀 같은 진리를 마음속에 깨달으며 “마치 불우한 역경을 혼자서 꿋꿋하게 견디어내고 마침내 훌륭하게 훌쩍 장성한 한 청년을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경외심과 연민”에까지 다다른다. 마르셸 푸르스트가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고 한 것처럼 누구에게나 흔한 풍경을 작가는 새로운 눈으로 관찰하여 생의 진리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선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