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는 비 내릴 땐 뜨지 않는다 / 김선기
2021년 06월 28일(월) 19:26
김선기 문학평론가/강진군 시문학파기념관장
유년 시절의 기억 한 조각이다. 수숫대를 꺾어 동네 형들을 따라 앞동산에 걸려있는 무지개를 따러 간 적 있다. 어머니에게 ‘정신 나간 아이’라는 취급을 받으며 혼나긴 했지만, 실제 그랬다. 그가 화를 낸 이유는 훗날 알았다. 앞동산은 ‘뱀 굴’이라 불릴 만큼 뱀의 출현이 잦아 어른들도 꺼리는 곳이었다. 하물며 꼬마들이 갔으니 놀랐을 법도 하다.

돌이켜보건대 어렸을 적 들었던 옛날이야기는 상상력을 키워주는 데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미당 서정주가 자신을 키워준 건 8할이 바람이었다고 했듯, 나의 감수성을 길러준 건 이름자도 쓰지 못한 할머니였다.

강냉이가 익어갈 무렵, 별빛이 소복소복 쌓인 평상에 누워 할머니는 팔베개를 베어주시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옛날 아주 먼 옛날에’로 한결같이 시작되는 이야기는 그렇게 재밌었을 수 없었다. 그 많은 이야기의 저장소는 허리춤에 찬 할머니의 비단 주머니였다. 그 안에는 이야기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었다. 정말 신기했다. 할머니의 ‘이야기주머니’는 아무리 꺼내어 써도 줄어드는 법이 없었다. 무지개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무지개에 대한 허상을 깨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초등학교 교문을 밟으며 ‘자연’이란 교과목을 배웠는데, 선생님은 매우 친절하고 자상하게 무지개의 원리를 가르쳤다. 그것도 실험용 비커까지 활용해서 말이다. 같은 시기에 산타클로스의 허상까지 눈치채버렸으니 그 허탈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 무지개를 딴다는 건 무모한 일이고, 어머니의 말씀만 따나 ‘정신 나간 사람’이나 하는 짓거리다. 우리가 움직이면 무지개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 움직인다. 이것은 우리가 결코 무지개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무리 잡히지 않는 무지개라 하더라도, 그것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무지개는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기도 하지만, 원의 곡선을 따라 일곱 색깔로 표현되는 그 자체가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결국 아름다운 표현이란, 여러 색으로 나타나는 색상 그 자체가 고유하게 갖는 특성과 그 본연이 가진 미묘한 색깔의 조화로 이루어진 하나의 형상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비 온 뒤라고 해서 무지개가 다 보이는 건 아니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현상이 최적의 상태가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일단 광원 역할인 태양과 프리즘 역할의 물방울이 서로 반대 방향에 위치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무지개가 뜨려면 몇 가지 필요충분조건이 뒤따라야 한다. 첫째는 하늘 한쪽에 태양이 빛나야 하고, 둘째는 그 반대쪽 하늘에는 반드시 물방울이 있어야 하며, 그리고 태양을 등지고 서야만 무지개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무지개 뜨는 원리는 사람 사는 세상과도 닮아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람은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세상은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현실은 어떠한가. 개인의 성향 존중과 개인주의의 가치 부여에 방점이 찍혀있다. 물론 ‘취존(취미 존중)’은 민주주의의 최고 가치이자 덕목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개인주의 경향이 강하다 보니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도덕성이나 윤리성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더 많이 챙기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공정과 정의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게 문제다.

우리 사회는 무지개 색깔만큼이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개인의 이익보다 공익성에 우선하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한 이유다.

요즘, 사회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린다. 그 원인은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데에서 찾을 수 있겠다. 대통령 선거라는 국가적 큰일을 앞두고 있다. 서로를 향한 열린 마음과 존중의 자세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기에 모두의 노력이 요구된다. 무지개는 절대 비 내릴 때는 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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