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20)

봄바람이 불어와 임 그리는 버들을 꺾어버리고

2021년 07월 13일(화) 19:23
靑樓曲(청루곡)
허난설헌

좁은 길 색주가 십만 호가 잇달고
집집마다 골목에 수레가 줄섰는데
봄바람 버들 꺾어 놓고 손님들 돌아가네.
夾道靑樓十萬家 家家門巷七香車
협도청루십만가 가가문항칠향거
東風吹折相思柳 細馬驕行踏落花
동풍취절상사류 세마교행답락화

허균의 누나 허난설헌은 15세에 김성립에게 시집을 와 자식 둘을 앞세웠고, 뱃속 자식까지 낙태시켰다. 남편에게 소박맞고, 시어머니에게 시집살이를 당했다. 26세에 유명을 달리한 여인이었다. 생시에 다시 세상에 태어난다면, 첫째 조선에선 태어나지 않겠다. 둘째 여자로는 태어나지 않겠다. 셋째 김성립과는 다신 만나지 않겠다고 했단다. 좁은 길에 청루가 십만 호가 잇달았는데, 집집마다 골목에 수레가 늘어서 있다고 하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봄바람이 불어와 임 그리는 버들을 꺾어버리고(靑樓曲)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으로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으로 본명은 허초희(許楚姬)로 알려진다. 그는 당시 유교적 윤리와 제도에 대해 적지 않은 불만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577년(선조 10) 15세에 결혼했으나 시어머니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남편 김성립과도 불화가 심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좁은 길에 청루가 십만 호가 잇달았는데 / 집마다 골목에 수레가 늘어서 있구나 // 봄바람이 불어와 임 그리는 버들 꺾어버리고 / 말 타고 온 손님은 떨어진 꽃잎 밟고 돌아가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푸른 누대의 노래]로 번역된다. 푸른 칠을 한 화려한 누각이라는 의미로 다른 책에선 ‘기녀’(妓女)를 뜻하기도 한단다. 그래서 시제 ‘청루곡’(靑樓曲)은 손님에게 술과 색(여자)을 겸해 파는 술집으로 ‘색줏집’이라 불렀다. 중국 왕창령(王昌齡)의 [청루곡] 한 편이 전하지만 시상이나 시의 흐름은 다르다.

요즈음은 거의 없어졌지만 시인은 아마 어느 사창가(私娼街)를 찾았겠다. 좁은 길에 색주가 십만 집이 잇달아서, 집집마다 골목에 수레가 늘어서 있다고 했다. 선경과 후정은 상당한 차이점이 발견되지만 후정의 심회를 나타내 보이려 했음이 시상 주머니 속에 주렁주렁 열려 있음이 아슴아슴하게 보인다.

화자는 본격적인 회한과 처지의 비참함을 함께 비교해 보이는 비유법 덩이가 담긴 시상이다. 봄바람이 불어와 임 그리는 버들을 죄다 꺾어 버리고, 말을 타고 온 손님은 떨어진 꽃잎 밟고 저리 돌아가고 있건만이라고 했다. 남편 김성립이 오늘도 사창가 어느 여인의 품에 잠들어 있지 않은지 찾아 나섰다가 세마교행(細馬驕行)에 꺾이고 짓밟혀진 여인들을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면서 읊었음이 훤하게 보인 시상이리라.

※한자와 어구

夾道: 좁은 길. 靑樓: 청루. 색주가. 十萬家: 십만 집. 家家: 집집마다. 門巷: 골목길. 七香車: 일곱 가지 향나무로 만든 호화스런 수레. 곧 색주가가 타고 온 수레. // 東風: 동풍. 吹: 불다. 折: 꺾다. 相思柳: 임 그리는 버들. 細馬: 잘 길들여진 말. 驕行: 교만 방자한 행동. 踏: 발로 밟다. 落花: 떨어진 꽃.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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