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팬데믹 이후, 회복할 일상은 있는가? / 임명규 |
| 2021년 08월 02일(월)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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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팬데믹 선언 이후 현재까지 감염자 수는 2억명 돌파를 앞두고 있으며 사망자는 42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어디까지가 끝일까? 코로나19는 종식될 수 있을까? 학계의 대체적인 전망은 비관적이다. 과학전문지 네이처가 세계 100여명의 전문가들에게 코로나19의 종식 가능성을 물었다. 90%의 전문가들은 종식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백신접종과 상관없이 반복적으로 코로나19에 걸리는 것 자체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덧붙여지고 있다.
지난 1년6개월 동안 반복했던 것은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의 회복’이다. 그런데 과연 돌아갈 ‘일상’이란 게 있을까? 이미 온라인 수업과 회의는 익숙해졌고, 물건 접촉과 타인 접근이 불편해졌다. 무관중 경기에 틀어놓은 가짜 함성 소리 역시 예능프로의 방청객 웃음소리처럼 어색하지 않다. 표정관리의 부담을 덜어주는 마스크의 부차적 기능에 만족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코로나19가 종식된다고 배달음식이 사라질 리 없다. 일상은 새롭게 갱신되고 있다. 무엇보다 팬데믹 이전의 일상을 ‘회복’해야 한다는 의식은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전 지구적 위기에 대한 무의식적인 ‘회피’일 가능성이 높다. 이 인류사적 사건을 무시하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자고? 팬데믹의 가진 유일한 미덕은 그동안 덮어두었던 난제를 섬뜩할 만큼 적나라하게손 위에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지금 시급한 문제는 팬데믹 드러낸 우리의 민낯을 냉정하게 마주보는 것이다.
팬데믹의 가장 큰 피해자가 청년과 여성이 되고 있다는 조사보고서가 발표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112개국을 조사한 보고서(2020년)에 따르면, 전 세계 청년의 17%가 코로나19로 인해 일자리를 잃어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다행히 일을 하고 있는 청년의 경우에도 42%가 노동시간 감소에 따른 소득 감소를 감당해야 했다.
피해는 특히 20대 초반, 서비스 및 판매 분야, 여성에게 집중되었으며 정신 건강 문제를 낳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3차 유행 시기에 일본에서는 여성 자살률이 전년대비 37% 증가했는데, 이는 남성 자살률 증가폭 보다 5배 많은 수치였다고 한다. 여성의 56%가 비정규직인 일본의 노동시장이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이미 한국은 한해 1만3천여명이 자살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 세계 4위 국가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2천98명)와 비할 수 없을 정도다. 오히려 재난은 팬데믹 이전의 ‘일상’이었을지 모른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2019년 대비 지난해 20대 여성 자살률은 43%나 급증했으며, 20대 4명 중 1명은 우울 위험군에 속한다.
상황이 이러니 갈수록 청년과 ‘미래’는 갈수록 어울리지 않은 조합이 되고 있다. 계층이동의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청년(62%), 노력의 대가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청년(68%), 집값 상승이 희망을 무너뜨렸다고 답하는 청년(65%)이 늘고 있다. 유럽연합에 따르면, 2008년 시작된 금융위기의 피해는 5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청년에게 남긴 소득감소 등의 여파는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서 상흔효과(sacrring effect)를 남겼다. 하물며 팬데믹의 피해는? 팬데믹이 지금 청년에게 남기고 있는 피해는 코로나19의 종식과 상관없이 더 넓고 깊을 것이며 더 길게 지속할 것이다. 무엇보다 20대, 저학력, 저소득, 여성에 집중해서.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한국사회에서 가장 집중적인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는 집단이 바로 ‘젊은 여성’이다. 혐오의 시선은 숏컷 조차, 여대에 다닌다는 사실조차 공격의 빌미 삼아 양궁 선수의 금메달 박탈을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보수정당의 ‘청년’ 대표는 입을 닫는 방식으로 이 무차별한 혐오를 승인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면서 ‘젠더에 대한 차별은 없어졌다’와 ‘(여가부가)젠더갈등을 키운다’라는 양립 불가능한 두 근거가 한 정치인의 머릿속에서 ‘비정상적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이유는 혐오의 원인을 혐오의 대상에게서 찾고자 하는 불온한 의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리라.
서로 다른 위기가 동시에 합쳐져 증폭된 ‘재앙’을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라 한다. 지금 한국의 여성 특히 20대 청년은 코로나19라는 전염병과 그것이 초래한 경제적 ‘재난’에 더해 ‘혐오’라는 사회적 질환을 동시에 감당해야 할 폭풍을 마주하고 있다. 이 폭풍의 경로를 누구도 정확히 계산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여파가 한국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고스란히 정산되어 ‘이체’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소득 하위 88%든, 100%든 복잡하게 가리지 않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