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몇 마디 / 김종·시인
2021년 08월 16일(월) 19:09
▶시 「이슬」은 “맑은 영혼의 물무덤”을 이슬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빛나는 기억 꼭꼭 싸매고” 있기 때문이란다. 이슬은 꼭꼭 싸맨 무덤에서 “초롱초롱 굴리는 눈망울”로 환기된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올올이 은실을 잣고/물 무더기로 통통 튀며 노닐다가” “슬그머니 사라지는/허망스러운 젖은 그리움”으로 이동한다. 이슬의 몸짓은 이처럼 ‘가여운 초로인생’인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늘 반전의 드라마다. “온 소우주를 품 안에 안고 있다/늘 아침처럼.” 초로인생인 듯 가엾게 스러지는 이슬이 실은 아침마다 소우주를 품에 안고 깨어난다는 이슬의 부활정신과 영원성으로 한자리에서 노래되고 있다.

▶시조 「우슬재를 지나며」는 해남이 화자 아버지의 고향인 듯하고 화자 또한 아버지와 동향이리라. 시조 전편이 한 점의 한국화처럼 수려한 고향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타향을 떠돌다보면 고향은 언제라도 가서 안기고 싶은 “허기진 내 영혼을 따뜻한” 안식처이다. ‘뒤틀린 가난’과 ‘슬픈 안부’는 대구처럼 읽혔고 화자 아버지의 과거가 순탄치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 그 연속선상에 “썼다가 지워버린 시간의 문신에는/옛길로 가는 길이 아리도록 새겨졌다”처럼 문신은 썼다가 지운다고 지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지우려 해도 옛길로 가는 길이 아리도록 문신으로 새겨져 있으니 우슬재를 지날 때마다 화자의 가슴에는 파문이 일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 「명옥헌 배롱나무」는 광주 인근의 담양에 있는 명옥헌과 그곳에 만발한 배롱나무꽃을 노래한 작품이어서 한결 친근함이 컸다. 아름다운 정경이 한눈에 떠오를 만큼 웅숭깊게 써내려간 이 작품에서 우리는 백일 간의 언어가 피고 지는 꽃의 비밀처럼 생의 여러 기척들을 읽을 수 있었다. “불의 감정을 수습하는 일은/전소될 때까지 예비된 시간을 태우는 일이다”나 명옥(鳴玉)을 풀어서 물이 옥처럼 운다는 표현은 압권이다. “허튼 바람의 볼모로 잡혀있더라도/부지중에 날아가는 씨앗이 되어 부싯돌을 쳐봤다면/분명 생의 의지가 번쩍이고 있음이”나 “꽃은 향기의 육필 원고/오래된 문양의 본을 뜨며/미문美文 하나 남기기 위해 무덕무덕 타오른다” 등의 표현은 숭얼숭얼 피어난 백일홍 꽃송이처럼 화병에 꽂아두고 오래도록 그 향기를 흠향하고 싶은 ‘미문’(美文)이다.

▶수필 「쌍둥이 찬가」는 외할아버지의 사랑이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달콤하게 흘러넘치는 작품이다. 세필로 묘사한 듯한 육아의 세세한 과정에 마치 독자도 함께 참여하는 것처럼 실감된다. 육아의 힘듦과 그 힘듦에서의 보람이 독자에게 온전히 전해지는 때문이다. 태어나자마자 수술해야 할 정도의 질병에서 어렵게 회복한 손주의 생명에 대한 외경성으로 필자의 복받치는 눈물을 보며 독자도 함께 복받쳐서 콧방울이 매콤해진다. 할아버지의 사랑으로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쌍둥이 찬가는 따라 부르고 싶을 정도로 쉽고 중독성 또한 강하다. 소위 라임이라는 운율이 있는 까닭이다. 필자의 바람처럼 하율이 서율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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