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故) 노성만 전남대학교 총장님을 추모하며 / 이정록 |
| 2021년 08월 24일(화) 19: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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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님은 의업(醫業) 명문가 출신 장손이다. 1939년 4월26일 광주시 양림동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광주숭일학교를 졸업하고 세브란스의전에 들어갔다. 의대 2학년 때 미국에 유학 갔고 귀국해서는 광주 제중병원(현 광주기독병원) 의사가 됐다. 아버지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의사였다.
총장님은 할아버지 영향을 많이 받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유년시절엔 할아버지 손을 잡고 병원과 양림교회를 오갔다. 할아버지와 함께 성경을 묵상했다. 서석초등학교와 광주서중을 거쳐 광주일고에 진학했다. 고통 받는 이웃을 도와주기 위해선 의사가 돼야 한다는 할아버지 말씀대로 전남대 의대에 입학했다. 무의촌에서 환자를 돌보겠다는 고등학교 때 결심을 대학시절 도서지역 의료봉사활동으로 실천했다.
의사가 된 후 총장님 삶은 순탄했다. 전남대 병원에서 정형외과 전문의 수련을 마친 총장님은 군의관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십자성부대 제1치료중대장으로 월남전에 참여했고 인헌무공훈장도 받았다. 1973년 모교 정형외과 전임강사가 됐다. 리더십과 연구력을 인정받아 대학병원 진료부장과 병원장(1993-1996)을 역임하면서 병원 행정을 혁신시켰다. 그 덕분에 전남대 제15대(1996-2000) 총장으로 피선됐다.
총장님은 전남대 수장(首長)으로 많은 활약을 펼쳤다. 총장님이 내건 대학경영 비전은 ‘21세기로 도약하는 열린 대학’이었다. 전남대 역사상 처음으로 외부기관인 LG경제연구원에 대학 진단과 발전계획 수립을 맡겼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발전계획에 따른 대학경영은 괄목할만한 연구력 향상으로 구체화됐다. 재임기간 동안 국제 학술지 게재 논문수와 연간 연구비 수주액이 각각 3배 정도 늘었다. 전남대가 명실상부한 지방 거점대학으로 자리 잡은 토대를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 결과 2000년 아시아위크지 대학평가에서 전남대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34위, 국내 7위로 평가 받았다.
총장님은 학생 교육에도 남달랐다. 외국어와 컴퓨터 교육을 중시하는 졸업자격인정제를 도입했다.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위해 교수평가제를 정착시켰다. 무엇보다 국제화 교육 강화를 위해 자매대학과 학생교류를 활성화시켰고 해외현장실습을 장려했다. 자연과학자이면서도 인문사회과학 육성에 힘썼다.
‘대학은 지역사회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총장님 지론이었다. 학교 정문과 후문 담을 허물어 캠퍼스 경관을 시민들에게 돌려줬다. 사회교육원(현 평생교육원)을 만들어 전남대가 보유한 교육 인프라를 지역사회와 공유했다. 지역발전과 연계된 많은 연구센터를 만들었다. 특히 1999년 1학기부터 경북대와 110명 학생을 상호 교류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 1999년 2학기엔 울산대로 교류 폭을 넓혔다. 이 사업은 동서화합에 크게 기여했다. 국가와 지역사회에 열린 대학의 전형을 보여줬다.
총장님은 전남대를 중심으로 지역대학(순천대, 목포대 등)이 연계 협력하는 가칭 ‘연합대학’ 체제를 구상했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대 위기를 일찍 예견한 구상이었다. 하지만 지역대학 무관심으로 불발됐다. 20년 전 전남대 중심 연합대학 시스템이 만들어졌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는 괴담이 우리 지역에선 예외가 됐을 것이다. 그것보다 우리나라 지역 고등교육 시스템에 일대 혁신이 일어났을 것이다. 위기에 처한 작금의 지방대 현실을 보면서 총장님 탁견이 못내 아쉽다.
총장님은 뛰어난 의학자였다. 152편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했다. 국내외 학회에서 발표한 구술논문도 357편에 달한다. 의료 기자재 개발로 세계적인 특허도 많이 받았다. 스위스 오스테오사와 1988년 공동개발한 ‘노(Rowe) 고관절 판(plate)’ 1992년 개발한 ‘이극 고관절 대치물’ 등이 그것이다.
총장님은 부드러운 카리스마 소유자였다. 머리는 차가우면서도 가슴은 참 따뜻했다. 혁신을 꾀하면서도 구성원 간 화합을 늘 강조했다. 대학본부에서 총장님 참모로 보직을 수행했던 필자 소견이다. 지역사회에 해야 할 일들이 많고 총장님 지혜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은데 너무 이른 나이에 우리들 곁을 떠난 총장님이 야속할 뿐이다.
노성만 전 전남대 총장님은 지난 20일 섬진강 맑은 물소리가 들리는 곡성 청계동 자락에서 영면에 드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