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과기원 사태가 주는 교훈 / 임우진

2021년 09월 01일(수) 19:41

임우진 민선 6기 광주서구청장

세계 4위의 연구역량을 자랑하는 광주과기원에서 뚜렷한 명분도 없는 총장 퇴출시도로 법적 다툼이 돼 지난 5개월간 학교행정이 마비되고 학교개혁 중단, 예산과 발전동력 좌절, 국가·지역의 연구개발 혁신기능 약화 등 많은 손실로 위기를 맞고 있다. 필자는 광주과기원 사태를 보면서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리더의 폭주에 대해, 적절히 대처 못 하는 학교와 지역사회에 한없는 자괴감을 느껴왔다. 그러나 최근 과기부 감사결과, 총장에게 특별한 잘못이 없다고 한데다 이사장이 뒤늦게 문제를 인식했는지 사표를 제출하고, 감사가 새로 선임되는 등 다소 변화의 조짐이 있어, 그간의 경과를 교훈으로 삼고자 필자의 생각을 적어본다. 과기원 사태가 단지 과기원만의 문제는 아니고, 똑 같은 문제가 곳곳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과기원 사태를 요약하면 노조의 무리한 요구와 총장 흠집내기에서 시작된 노사갈등이, 이사장의 총장 몰아내기로 변질돼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장기간 총장 공석사태 등을 유발하고, 결국 이사장이 스스로 사퇴하게 된 사태다. 문제의 핵심은 어느 기관에나 있을 수 있는 노사갈등을 원만히 풀어가지 못하고 막다른 곳까지 몰고 가서 피해를 키웠다는 점이다. 그렇게 된 원인은 이사장(이사회)의 잘못된 판단에 기초한 과도한 밀어붙이기 때문이지만, 폭주를 제어하지 못한 학교의 역량과 내부시스템, 그리고 이를 수수방관한 지역사회의 책임이 매우 크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특히 사태를 주도한 이사장은 어떤 근거로 일찍부터 총장퇴출을 위한 무리한 몰아내기에 집착했는지를 반드시 밝혀야 할 것이다.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세계에 자랑하는 광주 과기원과 민주도시 광주가 왜 이렇게 무기력해졌는가? 뭐가 두려워 모른 체 침묵하고 있었는가? 지역을 걱정하는 많은 시민들과 함께 사태의 발단, 전개, 대응의 문제점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사태의 발단과 진행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고 비이성적이라는 점이다. 1)타 과기원은 1명도 없는 노조의 인사위원 증원요구(3→5명)와 총장 비리의혹 제기 등 무리한 주장에 대해 타당성이나 사실조사 한번 없이 곧바로 총장사퇴를 종용했다. 2)총장의 사의 없음을 직접 수차례 확인하고서도 총장 사의수용이라는 기상천외의 의결을 했다. 3)총장의 법적 대응에 따라 법원이 이사회 의결의 효력정지 가처분을 결정하자, 이사장은 법원결정에 유감을 표명하고, 직에 복귀한 총장에게 곧바로 사표제출을 요구했지만 응하지 않자 특별한 새로운 사실이 없음에도 사표제출 거부 등을 이유로 해임결의를 했다. 즉 총장퇴출만을 향해 막장으로 내달은 것이다. 과연 뭘 믿고 무슨 확신으로 이렇게 질주했는지 밝혀야 할 일이다.

둘째, 학교가 비이성적 폭주를 제어 하기는 커녕 오히려 조장했다는 점이다.

이런 이사장의 폭주를 뒷받침한 것이 이사회다. 두차례의 총장해임 이사회에서 어떤 토론이 있었는지가 궁금하다. 이사회가 총장사의를 어떻게 확인했는지, 사표도 없고 구체적 표시도 없는 사의를 어떻게 수용했다는 말인다.

여기에다 총장사의 수용의결이 법원에서 일단 잘못됐다고 결정됐는데 여기에 어떤 책임을 졌는지도 궁금하다. 또한 노사갈등 상황 속에서의 일부 대화만 발췌해 신뢰상실, 리더십 부재라고 하고, 막연히 불신임하니까 사표를 내라고 하고 안 내니까 해임한다는 해임의결이 과연 합리적이라고 공감했는가. 이사장이라고 언제든지 총장에게 사표를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사들은 모두 인격과 덕망있는 각계의 리더들이겠지만 지난 두 차례 이사회는 실체적 절차적으로 정의롭지 못한 결정이다. 무리한 의결을 이사장이 주도했다고 해도 이사장의 폭주에 제동을 걸지 못한 이사들의 책임은 결코 작지 않은 것이다.

또한 학교가 잘못 가고 있는 동안 감사, 교수평의회, 총학생회, 동문회, 발전재단 등은 무슨 역할을 했는지 궁금하다. 교정에 대자보 하나, 의사를 표현한 플레카드 한 장 없는 것이 과연 자랑일까? 동문회와 발전재단, 원로교수들이 작은 목소리를 내려고 했으나 미미한 수준에 그친 것이 안타깝다.

셋째, 지역사회는 철저하게 수수방관하였다는 점이다. 과기원은 5·18에 대한 보상차원에서 광주에 입지해 국가적 지역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현 과기원 사태에 대해 과연 누가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가. 지역의 어느 국회의원도, 선거 때마다 지지에 보답하겠다던 더불어민주당도 아무 관심이 없다. 지역의 언론은 심층보도 한번 한 적이 있었는가? 시민사회는 투명성기구에서 성명 한 번 발표한 외에 누가 관심을 가졌는가. 한마디로 수수방관 그 자체다. 지역사회 한복판에서 무법자적 폭주를 하고 있는데도 나 몰라라 할 일인가. 광주의 부끄러운 모습이다.

광주과기원 사태는 무책임한 요구와 정보로 불신과 갈등을 유발시켜 이익과 세력을 얻으려는 자들에게 휘둘려 상황을 오판하고 사태를 악화시킨 사건이다. 그 과정을 합리적으로 컨트롤해야 할 직역들의 무관심과 침묵이 빚어낸 비극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단지 과기원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일당 독점지배의 장기화로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지역정치 담론은 사라지고, 권력쟁취를 위한 세력화 경쟁으로 지역을 분열·황폐화시키는 정치꾼들이 난무하는 질 낮은 사회로 전락해가고 있음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동네 주민자치까지도 작은 정치판이 되어 갈등을 빚고 있지 않는가? 선한 다수가 침묵한다면 결코 악한 소수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고, 건강하고 행복한 공동체는 요원한 일임을 자각하고, 행동하는 시민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