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김희준 법무법인 LKB앤파트너스 대표변호사·前 광주지검 차장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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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진 한 장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빗속에서 브리핑하는 법무부 차관 뒤에서 법무부의 한 사무관이 무릎을 꿇고 우산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이 사진 한 장으로 공직사회에서 관행화되어 왔던 과잉 의전의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이 사진은 과잉 의전이 반드시 청산되어야 하는 이유를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앞으로도 계속 회자될 것이다. 의전의 사전적 의미는 행사를 치르는 일정한 법식 또는 정하여진 방식에 따라 치르는 행사이다. 의전은 외교 분야에서 가장 핵심적인 업무였다. 지금은 공직사회 전반에서 의전은 매우 중요한 업무로 취급된다. 아무리 콘텐츠가 좋더라도 의전이 잘못되면 담당자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담당자들은 실질적 내용보다는 의전에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의전에 들이는 노력은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아무리 조그마한 행사라도 의전 때문에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너무나 많다. 이 때문에 담당자들은 골머리가 아프다. 헤드테이블 위치부터 자리 배치까지, 행사 진행과 발언의 순서는 어떻게 정할지, 식당 예약과 메뉴는 어떻게 할지, 건배사는 어떤 내용으로 할지 등 신경 써야 할 일들이 한두개가 아니다. 심지어는 행사의 개회사뿐만 아니라 건배사까지도 작성해주어야 한다. 마치 영화의 시나리오처럼 각 멘트시 해야 할 제스처까지 구성해 주는 경우도 있다. 모든 의전은 철저하게 기관장 등 그날 계급이 가장 높은 사람을 중심으로 짜여진다. 이번 법무부 차관의 과잉 의전 사태도 이러한 공직사회의 지나친 의전문화가 낳은 참사이다.
필자가 근무했던 검찰도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예전에는 과잉 의전이 심하였다. 검찰은 다른 공직사회보다 계급문화가 더 확고한 편이다. 간부급인 검사장, 차장검사, 부장검사 이외에 평검사들도 서열이 매우 분명하다. 수석검사, 차석검사, 말석검사 등으로 순번이 확실히 정해져 있다. 이 순번은 ‘석순’이라고도 하는데 모든 의전의 확고한 기준이 된다. 석순은 자리에 앉는 차례라는 의미이다. 회의나 식사 시에 앉아야 할 자리도 석순에 반드시 따라야 한다. 술자리에서 술을 돌리는 순서도 석순대로 해야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길을 걷는 것도 석순대로 해야 한다. 이를 어겼다가는 선배들로부터 개념이 없다는 핀잔을 듣는다. 일반회사의 경우는 통상적으로 막내가 술을 잔에 따라 돌리는데 검찰은 계급이나 석순이 가장 높은 사람부터 낮은 순서대로 술을 잔에 따라 돌린다. 술자리에서는 돌아가면서 스피치를 해야 하는데 이것도 석순대로 진행한다. 이처럼 모든 기준은 계급과 석순이다. 이룰 지키지 않으면 선배들ㄹ부터 개념이 없다는 핀잔을 듣는다. 의전의 심오한 중요성을 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군대문화와 비슷하다. 이러한 과잉 의전문화 속에서 평생 근무하다 보면 과잉이라는 인식은 있을 수 없고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의전을 매우 중요시한다고 해서 ‘의전총리’라고 불리는 황교안 전 총리도 이러한 문화 속에서 평생 살아온 영향이 클 것이다. 특히 황 전 총리는 검찰 내 공안통이었기 때문에 의전을 특히 더 중요하게 생각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과잉 의전은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적폐다. 과잉 의전은 조직을 경직화시키고 업무의 효율성을 현저히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실질적 내용보다는 의전이라는 형식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보면 콘텐츠는 사라지고 이벤트만 남게 된다. 이러한 사회는 발전 가능성이 없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우리와 같은 과잉 의전은 찾아보기 힘들다. 행사에도 특별한 격식이 없다. 연설도 격식을 갖추지 않고 기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한다. 대통령도 비가 오면 스스로 우산을 쓴다. 누군가 대신 들어준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직접 우산을 들고 연설을 했다. 일행과 함께 우산을 쓸 때는 자신이 직접 우산을 들었다. 선진국에서는 중요업무를 추진하는 경우 계급장 떼고 열띤 토론을 하여 생산적인 결론을 이끌어낸다. 브레인스토밍이 일상화되어 있다. 계급이나 석순대로 토론을 해서는 결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후진국일수록 계급과 서열을 중시한다. 계급이 낮은 사람들은 높은 사람들 지시만 기다리고 그것이 틀렸더라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다. 그저 받아적기를 열심히 하면서 복지안동만 할 뿐이다. 납작 엎드려서 눈동자만 왔다 갔다 하면서 눈치만 본다는 의미이다. 이런 국가에서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아이디어가 도출될 수는 없다.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방경제에서 창의경제로 나아가야 한다. 예전에서는 선진국의 기술을 베끼기만 해도 발전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창의력이 필수적인 시대가 되었다. 창의경제시대에는 창의적 인재를 필요로 한다. 과잉의전이 판을 치는 나라에서는 결코 창의적 인재가 나올 수 없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과잉 의전은 반드시 척결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