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25)

인기척에 해오라기가 잠을 깨 날고 있구나

2021년 09월 15일(수) 19:38
秋月夜(추월야) / 추향
노 저어 맑은 강 강어귀에 이르니
인적에 해오라기 잠 깨어 나르는데
가을에 산이 붉으며 보름달 둥그네.
移棹淸江口 驚人宿驚飜
이도청강구 경인숙경번
山紅秋有色 沙白月無痕
산홍추유색 사백월무흔

가을 하늘은 그지없이 맑다. 그래서 가을 하늘을 두고 더없이 맑고 높다고 했다. 역시 가을은 수확의 계절, 국화의 계절, 채움의 계절이 아닌지 모르겠다. 휘영청 떠 있는 달을 보라. 얼마나 맑고 깨끗하게 보이는가. 가을 달은 선명해 시상의 대상이 돼 많은 노래가 지어 불러지고 있다. ‘달아달아 밝은 달아’를 연발했던 노래다. 가을이 짙은 탓인가 산 빛은 저리 곱게 붉고, 흰 모래 위에는 달의 흔적도 없는 것이라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인기척에 해오라기가 잠을 깨어 날고 있구나(沙白月無痕)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추향(秋香)으로 경남 밀양의 기녀인 여류시인이며 생몰연대와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다만 사랑하는 남자 심육이 유배돼 사약을 받고 난 후 따라서 같이 죽었다고만 알려진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급히 노를 저어 맑은 강어귀에 이르렀더니 / 인기척에 해오라기가 잠을 깨어 날고 있구나 // 가을이 짙은 탓인가 산 빛은 저리 곱게 붉고 / 흰 모래 위에는 달의 흔적도 없는 것을]이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백사장엔 달의 흔적도 없구나]로 번역된다. 모래가 너무 곱고 희다 보면 달빛은 제 빛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흰빛이 흰 색깔에 뒤섞이는 현상이다. 흰 얼굴에 분을 발라 봐야 흰 연지분이 독특하게 튀어 나오게 화장이 나타나지 않는다. 검정 옷 흰 와이셔츠는 대비돼 나오지만 그렇지 않으면 색상의 대비가 나타나지 않는다. 색감의 대비적인 조화의 원리라고 생각된다.

시인은 새벽에 일어나 배를 저어 강어귀에 다다라 선경의 시상과 함께 시 줄이나 됨직한 시적 주머니를 매만지고 있다. 급하게 노를 저어 맑은 강어귀에 이르렀더니, 인기척에 알아차린 해오라기가 깊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 날고 있다고 했다. 고요하게 잠든 밤을 흔들어 깨우는 심술을 부리는 격이 됐지만 이는 후정을 일궈 내기 위한 시인의 착상이다.

화자는 눈에 들어오는 가을의 소묘는 한 층 더 밝고 훤한 시상으로 일궈 내고 있다. 가을이 짙어 가는 탓인가 산 빛은 저리도 곱게 붉게 타고 있는데, 흰 모래 위에는 달의 흔적마저 없다는 눈을 의심하게 된다. 색깔의 대비를 보이는 시상이지만, 달의 둥근 모습까지 그렸다.

※한자와 어구

移棹: 노를 저어 옮기다. 급하게 노를 젓다. 淸江口: 맑은 강의 어귀. 驚人: 사람을 보고 놀라다. 宿驚飜: 해오리기가 놀라서 날다. 놀란 해오리기 날다. // 山紅: 산이 붉다. 秋有色: 가을은 색깔이 짙다. 沙白: 백사장. 흰 모래밭. 月無痕: 달빛에 흔적이 없다. 모래가 흰색으로 달빛이 숨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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