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울 속의 폭력 / 천세진 |
| 2021년 09월 26일(일) 2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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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폭력적인 사회는 전쟁 중인 사회다. 비록 적군에 한정한다고는 하지만 전쟁 중에는 살인이 합법적으로 인정된다. 실제 상황에서는 폭력이 군인에게만 미치지 않는다. 군인과 민간인은 구분되지 않는다. 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강간, 고문, 폭행 같은 폭력은 징치의 대상에서 쉽게 벗어난다. 최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재집권 상황에서 그 사실을 명확하게 확인했다. 법집행은 자의적이었고, 이전 정부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복수라는 이름으로 즉결 처형되었다. 아무 집이나 들어가 여성을 탈레반 군사와 결혼시키는 것은 강간이나 다름없지만 막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탈레반은 샤리아법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렇다면 그건 더욱 잔혹하다. 폭력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기 때문이다. 전쟁 중인 사회에서는 작은 폭력은 고사하고 큰 폭력조차도 제대로 제어되지 않는다.
아티크 라히미는 그의 소설 ‘인내의 돌’에서 여성에 대한 문화적 폭력이 난무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이 어떤 처지에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작품 속에 이런 문장이 있다. “당신들, 남자의 세계에선 자존심이 왜 그리도 피와 연관되는지 난 정말 이해가 안 되었어.” 자존심은 종종 복수의 다른 이름으로 나타난다. 자존심이 문화의 탈을 쓰면 얼마나 폭력적인 사회가 될 수 있는지를 이 한 문장이 명쾌하게 보여준다.
한국은 어떤 사회인가. 한국은 전쟁 중인 사회는 아니지만, 일제의 압제와 분단 상황, 오랜 군부 통치기를 통해 전쟁 중인 사회에 버금가는 폭력성이 주입된 사회다. 최근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다는 국내외의 평가가 잇따르고 정부에서 선진국 진입을 자찬하고 있지만, 폭력의 형태와 양상을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국가 권력은 이미 폭력성을 내재하고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국가 주도의 교육 행위까지 상징적 폭력으로 보았을 정도다. 선진국은 자신의 폭력성을 정치적으로 제어하고, 각종 범죄적 폭력으로부터 국민들을 지킬 수 있도록 감시해야 한다. 그 두 가지를 잘해내야만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잔혹한 범죄들의 대상은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이다. 선진국으로 불리는 국가에서도 폭력적 범죄의 대상에서 여성과 아이들의 비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범죄에 대한 대처에서 우리와 차이를 보인다. 약자인 여성과 아이들을 향한 잔혹 범죄에 대한 구형량에서 한국은 유럽 국가들이나 미국에 비해 지나치게 관대하다.
폭력에 관대하면 폭력은 관대한 수준만큼 잔혹해지고 높아진다. 이은주 의원(정의당)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2016-2020)간 살인·살인미수, 폭행·상해, 감금·협박, 성폭력 등 데이트 폭력으로 입건된 4만7천여명 중에 구속된 이가 2천7명으로 전체의 4.2%에 불과했다고 한다. 법적 처벌이 능사는 아니지만, 관대한 처벌은 폭력을 지속시키고 단순 폭력이 강간, 살인 등 더 심한 폭력으로 발전하게 만든다. 결국 국가가 잔혹한 폭력을 방조한 셈이 된다.
폭력에 대한 대응과 형량은 폭력에 대한 그 사회의 인식을 반영한다. 여성과 아동에 대한 성적, 육체적, 정신적 폭력에 대한 낮은 형량은 그 사회가 그런 행동을 범죄로 인식하는 정도가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확장하면, 여성을 성적 도구로 여기고, 아동을 보통의 인간이 아닌 낮은 수준의 인격체로 여기는 것을 말한다. 그런 인식은 자연발생적이 아니다. 만든 대상이 반드시 존재한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쓰지 않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매일 폭력에 물든 뉴스를 접한다. 하위 카스트 계급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난무하는 인도, 앞서 언급한 아프가니스탄 등 멀리 있는 나라의 폭력까지 접한다. 그 모든 폭력을 거울처럼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 안에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닮지 않았다고, 나는 폭력적이 아니라고, 우리 사회는 인도나 아프가니스탄과 다르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은 가해자들이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는 오로지 피해자에게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