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26)

마치 천길 푸른 하늘로 오른 모양 같네

2021년 09월 27일(월) 19:18
四友亭詠松(사우정영송) / 인재 강희안
계단 앞 우뚝 덮은 한그루 소나무
오래되고 늙어서는 용이 되어서
세모에 바람 부는데 천길 하늘 오르네.
階前偃盖一孤松 枝幹多年老作龍
계전언개일고송 지간다년로작룡
歲暮風高 病目 擬看千丈上靑空
세모풍고개병목 의간천장상청공

사우정은 자연의 네 가지가 피곤해 잠시 쉬어 간다는 뜻을 담아 붙여진 이름이다. 문경시 농암에 자리 잡은 사우정에는 높은 산의 기슭에서 고고한 물이 흐르다가 피곤하면 잠시 쉬어 갔을지도 모른다. 밝은 달이 잠시 쉬는 틈에, 맑은 바람이 시샘이 나서 투정을 부리는 모습도 상상된다. 山·水·風·月이란 네 가지 벗이란 뜻을 품는다. 계단 앞을 오연히 덮은 한 그루 소나무, 가지와 줄기가 오래 되어 늙어 용이 됐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마치 천길 푸른 하늘로 오른 모양 보는 것 같네(四友亭詠松)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인재(仁齋) 강희안(姜希顔:1417-1464)으로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시·글씨·그림에 모두 뛰어나 시·서·화의 삼절(三總)이라 칭송받았다. 세종 23년인 1441년에 식년문과에 급제해 돈령부주부·집현전직제학이 됐고, 세조 1년인 1455년에 사은부사가 돼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던 인물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계단 앞을 오연히 덮은 한 그루 소나무 / 가지와 줄기가 오래 되어 늙어 용이 되었네 // 세모에 바람 높이 부는데 앓는 눈을 비비고 보니 / 마치 천길 푸른 하늘로 오른 모양 보는 것 같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사우정에서 소나무를 읊다]로 번역된다. 사우정은 경북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에 소재한 정자다. 철조망으로 뒤범벅 돼 있어 그 내력을 자세히 알 수 없다. 대문에 붙어져 있는 내용으로 보아 사우정의 내역을 알 수 있어 보인다. 山·水·風·月이란 네 가지 벗이란 뜻을 품는다. 이렇게 보니 ‘고산(孤山), 유수(流水), 명월(明月), 청풍(淸風)’이란 네 벗이 이곳에 머물며 잠시 쉬어 갔음을 알려주는 정자란다.

시인은 사우정을 찾아 선경의 오뚝한 시상 앞에 늙은 소나무의 위용에 어안이 벙벙했음을 보이는 시상의 멋을 부린다. 계단 앞을 오연히 덮은 한 그루 소나무, 가지와 줄기가 오래돼 늙어서는 용이 됐다고 했다. 소나무의 껍질이 마치 용의 겉모습이나 비늘과 같다는 착상에 비유적인 색칠을 하고 있다.

화자는 소나무의 위용을 마치 늙은 용이 승천하기 위해 꿈틀거리는 듯 하는 생각을 했음을 보인다. 세모에 바람 높이 부는데 앓는 눈을 비비고 보니, 마치 천길 푸른 하늘로 오르는 것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홍만종(洪萬宗)은 소화시평에서 이 시를 두고 “격조가 가장 높다”(格調最高)고 평했다.

※한자와 어구

階前: 계단 앞. 偃盖: 오연히 덮다. 一孤松: 외로운 소나무 한 그루. 枝幹: 가지와 줄기. 多年: 오래 되다. 老作龍: 늙어서 용이 되다. // 歲暮: 세모. 섣달 그믐날 밤. 風高: 바람이 높다. 病目: 앓은 눈을 비비다. 擬看: 보는 것 같다. 그렇게 의심하다. 千丈: 천길. 上靑空: 푸른 하늘을 오르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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