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몇 마디 / 박덕은 문학평론가

2021년 09월 27일(월) 19:18

▲시 ‘자식을 잃은 부모’ 시는 숨이 턱턱 막히는 상실감, 뼈저린 그리움들을 지면에 풀어놓아야 한다. 상처를 드러내는 일로 시 쓰기가 시작되기에, 심장에 박힌 슬픔을 들여다봐야 한다. 생살을 파고드는 서러움을 마주해야 하고, 급류처럼 휘몰리는 아픔을 응시해야 한다.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자식 잃고 고통스러워하는 부모이다. 그 아픔, 그 가슴앓이, 그 피멍, 그 신음 소리가 피부로 시리게 스며든다. 얼굴은 창백하고, 입은 곡비처럼 울어대고, 통곡과 눈물과 울음이 쏟아진 뒤, 새까맣게 타버린 아픔, 다시 터지는 눈물, 애끓는 영혼의 소리, 창자 끊어지는 듯한 슬픔으로, 그 어디에도 몸 둘 곳 없는 이승, 고뇌의 공간에 둘러싸인다. 자식 잃은 부모의 심경, 그 세계를 선명히 그려놓고 있는 시, 읽는 독자의 가슴도 그 시린 아픔으로 젖어들게 하는 시, 슬픔의 전율이 흐르는 시라서, 더욱 가슴 깊이 와 닿는다.

▲시 ‘정’ 이 시는 세상을 대하는, 삶을 대하는, 자연을 대하는 마음 자세를 얘기하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세상을 바라볼 때 아름다운 느낌, 정으로 다가서는 순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상대의 눈빛에 마음 끌리는 감정, 햇살이 대지를 달구고, 달빛이 창가 서성이고, 꿩들이 먼발치에서 드나들고, 텃밭 호박꽃에 날아든 벌나비, 삶이라는 옷깃에 스치는 바람 등에서도 순수를 느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각박하고 힘든 삶일수록 이 정, 이 순수, 이 느낌이 더욱 필요하다고 설파한다. 어쩜 이 정이 시심은 아닐까. 이 정과 시심은 하나되어, 우리 가슴과 영혼 속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시적 형상화 속에 담긴 순수를 매일 만나고 싶게 하는 시라서 더욱 좋다.

▲시 ‘금사정 동백’ 시는 세상의 억압에 맞선 비판의 목소리다. 억압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으며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그 물음을 통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이 시는 그런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금사정에 있는 동백나무에 눈길을 고정하고 있다. 유생들의 얼이 서린 상소문, 그 결백으로 심은 동백나무, 한겨울에도 곧은 절개의 표상처럼, 오백 년의 숙명 안고, 선인들의 의지처럼 꿋꿋이 자리 지키며 서 있다. 동백나무를 바라보는 시적 화자나 독자들은 어느새 유생들의 올곧음, 지조, 꿋꿋함, 절개 앞에 숙연해진다. 시 속으로 들어가 함께 공감하고 접목되어, 마음이 순화되고 의지와 열정에 동화된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려 했던 우리들의 마음을 깨어나게 하고 있다.

▲수필 ‘더러운 사람들’ 이 수필은 사건을 중심으로 한 서사(敍事) 수필로, 소설처럼 대화글이 삽입되어 있어 사건이 보다 실감 나게 다가온다. 나환자들의 치료와 위로와 복지를 위해 한평생을 바친 신정식 박사의 장례식과 노제 때 일어난 사건, 고인의 유언에 따라 소록도 나환자들의 복지기금으로 쓰이기로 한 부의금, 이걸 도둑질해 간 비정한 사람들, 감히 누가 그런 짓을 했을까. 더러운 걸까, 모자란 걸까, 꽉 막힌 걸까. 참으로 슬픈 정경이다. 가슴까지 먹먹해진다. 꼭 그렇게까지 비참하게 비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참 개탄스럽다. 그러나, 한 가지, 세상은 이상하게도 결국에는 진리 쪽으로, 진실 쪽으로, 사랑 쪽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이다. 이 우주의 순리를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부의금을 훔쳐 간 자들이여, 그래 너희 여생이 편안하더냐? 어찌 그리 사노? 이 수필을 대하면서, 마음이 착찹해진다. 다시 한 번 명심할 일이다. 세상은 결국 진실과 진리와 사랑 쪽으로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