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로 읽는 전라도 역사기행]화순 적벽과 ‘방랑 시인’ 김삿갓

하늘로 치솟은 붉은 기암괴석, 김삿갓이 방랑 멈춘 절경

2021년 09월 29일(수) 19:30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 보산리, 장항리 일대 7㎞에 걸쳐 각양각색의 붉은 기암괴석으로 절경을 이룬 ‘화순 적벽’전경. 돌의 색깔이 붉어 ‘석벽’이라고 불려오던 것을 귀양 온 최산두가 중국의 적벽에 버금간다고 해 ‘적벽’으로 바꿨다고 전해진다. <광주매일신문 자료사진>
‘물이 줄어 산 높아진 적벽의 가을이여
동복천 어이하여 옛날 황주 닮았는가?’

각양각색의 붉은 기암괴석과 울긋불긋한 단풍이 호수에 비쳐 자연이 만든 산수화가 그려진다. 아침저녁 다르고 하루하루 달라진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가을 단풍을 만끽하기에 최고의 장소라고 해도 손색없는 곳, 바로 화순 적벽이다.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요즘, 지친 우리에게 가을의 정취를 만끽해 주고, 위안이 되어주는 힐링의 장소로 적격이다. 되도록 다른 사람과 접촉을 줄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코로나19 시대의 여행지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무등산고송하재(無等山高松下在)
적벽강심사상류(赤壁江深沙上流)

1841년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 1807-1863)이 화순 적벽을 찾아 읊은 시이다.
물염정에 자리한 ‘방랑시인’ 김삿갓 시비. <광주매일신문 자료사진>

‘무등산이 높다지만 소나무 아래요, 적벽강이 깊다더니 모래 위로 흐르는구나’라는 의미이다. 동복에 사는 창원 정씨 가문과 인연을 맺어 화순 적벽을 찾은 김삿갓은 세 차례나 들러 시를 남겼다. 적벽이 그리웠는지, 1857년 김삿갓은 평생을 짚고 다니던 죽장을 내던지고 동복현(화순군 동복면) 정씨 집에 10년 가까이 머물다 숨을 거뒀다. 그는 마을 뒤편 ‘똥뫼’라는 곳에 매장됐는데, 일종의 무연고자 묘이다. 그래서 김삿갓의 묘를 찾는 데 120년이 걸려 고향 영월로 옮겨졌다. 적벽의 아름다움에 취해 방랑시인 김삿갓이 방랑을 끝내게 한 곳이 적벽이라는 게다.

현재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 보산리, 장항리 일대 7㎞에 걸쳐 있는 붉은 절벽을 ‘화순 적벽’이라고 부른다.

조선시대에는 동복현에 위치해 있어서 ‘동복적벽’이라고도 불리기도 했다.

‘적벽’은 중국 후한 말 208년, 조조가 유비, 손권 연합군과 싸웠던 곳이다. 100만 조조 대군이 적벽에서 대패하여 결국 중국이 조조의 위나라, 유비의 촉나라, 손권의 오나라로 삼분되어 삼국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화순 적벽은 중국 적벽보다 그 규모는 작지만, 비경은 견줄만하다.

돌의 색깔이 붉어 ‘석벽’이라고 불려오던 것을 귀양 온 최산두(崔山斗, 1483-1536)가 중국의 적벽에 버금간다고 하여 ‘적벽’으로 바꿨다.

조선시대에 가객들이 높은 절벽 위에서 짚불을 강으로 날리는 낙화놀이를 즐겼다고 전한다. 다산 정약용도 동복 사또를 지낸 아버지와 함께 유람했으며, 광주와 나주목에 부임한 사또들이 가장 먼저 찾은 명승지였다.

담양 식영정의 주인 임억령, 의병장 고경명, 실학자 홍대용도 남도를 방문하면 가장 먼저 찾았던 곳이다.

‘오래전부터 화순의 동복에 있는 적벽의 아름다운 경치가 대단하다는 말을 듣고도 직접 찾아가 소동파 놀이를 이어갈 길이 없으므로, 장난삼아 절구 한 수를 지어 흥을 붙여보다가 동복 운로 사또에게 보내 화답을 구하다’

물이 줄어 산 높아진 적벽의 가을이여
동복천 어이하여 옛날 황주 닮았는가
시인은 강을 가로지르는 학 쫓아
임고정 시월 배로 날아 건너지 못하네

1677년 광주목사로 부임한 이민서 목사가 동복 적벽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싶어 친구였던 동복사또 조운로에게 보낸 시다. 이민서는 동복 적벽의 경치를 중국 소식의 ‘후적벽부’(後赤壁賦)’를 인용했다.

광주목사 이민서와 동복사또 조운로는 송시열의 제자로 서울에 있을 때 하루가 멀다고 만났던 사이였다. 마침내 시간을 낸 광주목사 이민서가 조운로를 만나러 동복현(현재 화순군 동복면)을 찾아갔다.

적벽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싶은 마음과 친구를 보고 싶은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갔다. 마침 조운로의 아들 조정만이 동복에서 놀고 있었다. 이민서는 가을 적벽을 감상하면서 조정만에게 시를 써 줬다.

‘입으로 불러 조정만에게 주며 배움에 힘쓰라는 뜻을 담다’
적벽은 가을이라 노닐 만하고
협선루는 밤중에 오를만 하겠지만 어찌 같으리.
대 숲속 집에서 고요히 책 읽으며 등불 마주하라.

하루 종일 적벽과 협선루에서 놀고 있는 어린 조정만을 보고 ‘배움에 힘쓰라’는 시를 지어준 게 정말 효과가 있었다. 훗날 조정만은 나주목사와 광주목사, 능주목사로 일하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현재 코로나19로 화순 적벽 가운데 최소 절경인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은 아쉽게도 볼 수 없다.
‘화순 적벽’(和順赤壁, 전남도기념물 제60호) 상류의 물염적벽을 조망할 수 있는 이서면 창랑리 물염마을에 세워진 물염정.

인근 물염정과 물염적벽으로 아쉬움을 대신하면서 코로나19가 종식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려야 한다. 5분만 발품을 팔면 도로에서 청량적벽의 아름다운 풍경도 볼 수 있다.

화순 적벽은 1970년 이후 여름철이면 광주에서 몰려드는 피서객으로 북적였다. 그러나 1985년 동복댐이 세워지면서 출입이 제한됐다. 동복댐이 들어서면서 적벽 일부를 비롯해 인근 15개 마을이 수몰됐다.

<신광재·역사문화 전문기자>
2015년 광주시와 화순군이 협의해 수몰된 지 30년 만에 일반인들에게 개방됐다.

수몰 이후 30년 만에 모습을 보였을 때 하늘로 수직으로 치솟아 오른 붉은 기암괴석의 위용을 보고 모두가 압도됐다.

어머니의 품처럼 잔잔한 동복호 위로 붉은빛의 거대한 암석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설렘 화순 버스투어(적벽투어)는 지난해 2월 중단된 후 지금까지 운영을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한두 시간 발품을 판다면 노루목적벽은 볼 수 없지만, 가을의 단풍과 붉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한 폭의 산수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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