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로 읽는 전라도 역사기행]화엄사 사사자(四獅子)삼층석탑 지리산으로 돌아온 1300년 전 사자 네 마리

2021년 10월 19일(화) 18:58

지난 9월29일 구례 화엄사 경내에서 열린 사사자 삼층석탑 해체·복원 회향 기념법회 모습.작은 사진은 해체 전 사사자 삼층석탑.<호남불교문화원 제공>

-보수공사 7년 만에 대중에 공개-
사자 네 마리가 5년 만에 지리산 화엄사로 무사히 돌아왔다.

통일신라 때인 8세기에 건립된 다보탑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인 이형석탑으로 꼽히는 ‘화엄사 사사자(四獅子)삼층석탑’(국보 35호)이 최근 보수·복원을 마쳤다. 보수의 필요성이 제기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화엄사가 5년간 복원 공사에 힘써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

사자는 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어 고대부터 불교 조형물에 자주 등장하는데, 처음에는 석등에 이용됐다. 통일신라 때 충북 법주사와 광양시 중흥산성 안에 있던 석등에 사자 두 마리가 등장하게 됐다. 두 석등은 모두 사자가 마주 보고 서서 석등을 받치고 있다.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석등 (국보 제103호)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 있는 ‘광양 중흥산성 안 쌍사자 석등’은 사자 두 마리가 뒷발을 받침돌에 대고 마주 서서 앞발을 높이 든 자세로 상부를 지지하고 있다. 마치 사자 두 마리가 부처의 길을 밝히려는 듯 충성스러운 자세로 흐트러짐이 없다.

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하는 시설로 사찰 법당 앞에 세웠으며, 호남지방에서는 ‘북’같은 모양의 석등과 두 마리 사자가 마주 서서 앞발로 상대석을 받친 특이한 석등이 제작됐다.

구례 화엄사에도 대웅전인 각황전(국보 67호) 앞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12호)이 있는데, 한국 최대 규모의 석등으로 형식이 배가 북처럼 불룩 나온 고복형이다.

이 석등은 연꽃 띠를 두른 북 모양으로 옥개석 추녀 끝마다 높은 귀꽃이 있는 등 기존과 달리 새로운 양식적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그 가치가 높아 국보 12호로 지정됐다.

특이하게도 화엄사에는 석등 양식에서 벗어난 또 하나의 석등이 있다.

‘화엄사 효대 사사자 삼층석탑 앞 석등’으로 석등 안에 비구니스님이 상부석을 머리로 받치고 공양하는 자세로 서 있다. 이 석등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앞에 위치해 마치 스님이 365일 부처를 모시려는 듯하다.

불교에서 석탑의 의미는 남다르다.

석탑은 부처의 묘다. 그렇기에 탑돌이를 통해 부처님에게 소원성취를 비는 이유이다.

탑이란 원래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스투파를 가리킨다. 석가모니가 죽자 유해는 화장을 했는데, 인근 나라에서 석가모니의 유골인 진신사리를 서로 가져가겠다고 싸움이 일어났다. 결국, 석가모니의 제자 ‘드로나’가 이를 중재해 사리를 8개로 분배했다.

‘드로나’는 사리가 들어 있던 병을 가져가고, 뒤늦게 당도한 나라에서는 남은 재를 가져갔다. 이렇게 해 8개의 사리와 병, 재를 모신 무덤 10개를 세우게 됐는데, 이 무덤을 스투파라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탑이 바로 스투파 개념이다. 그러나 사리를 얻지 못한 다른 나라에서 100년 후, 또 다시 분쟁을 일으켰다. 기원전 3세기에 인도 아소카 왕(재위 268-232)이 8개의 사리탑을 열어서 이를 8만4천개로 나눠 탑에 봉안하게 했다. 이후 스투파, 즉 탑 숭배가 일반화되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대웅전의 불상이 예배의 중심이지만, 원래는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탑이 예배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에 8만4천개로 한정된 진신사리를 탑에 모실 수 없어서 대신 불상이나 불경을 넣기도 하는데, 이를 법신사리라고 한다. 우리나라 대부분 탑은 불경을 넣은 법신사리이다.


-석가모니 진신사리 봉안-
우리나라에도 인도에서 건너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있을까?

‘삼국유사’에 따르면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우리나라에 전래한 경위가 전해지고 있다. 643년(선덕여왕 12년) 자장법사가 중국에서 가져온 부처의 물건을 신라로 가져와 그것을 세 부분으로 나눠 경주의 황룡사, 울산의 태화사, 양산의 통도사에 모셨다고 한다.

이것들이 바로 우리나라의 확실한 스투파다.

2000년 6월 통도사에서 경주 황룡사의 진신사리 2과를 1천400년 만에 세상에 공개했다. 하나는 4mm이고, 다른 하나는 2.8mm의 부처의 사리였다.

진신사리에 얽힌 일화는 고려시대에도 전해지지만 지금 어디에 모셔져 있는지 알 수 없다.


- 국보 4점 간직한 천년고찰 화엄사-
통일신라 때, 8세기 이후 불국사 석가탑 형식의 석탑이 주류를 이룬 가운데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

첫 번째는 탑에 사천왕상, 인왕상 등 부조를 새기는 경우가 유행했고, 둘째는 다보탑과 같이 새로운 형식의 석탑이 출현했다.

각황전에서 바라 본 화엄사 전경. <호남불교문화원 제공>

다보탑만큼이나 새로운 변화의 산물이 바로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으로 탑이라기보다는 조각에 가깝다.

통일신라 3층석탑의 전형을 갖추고 있지만, 상층기단에는 네 귀퉁이에 네 마리의 사자가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비구니스님이 받치고 서 있다.

이 탑은 불국사 다보탑과 달리 네 마리 사자가 크게 부각돼 웅대한 기상과 세밀한 조각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8세기 중엽 석조미술의 한 정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탑 앞 석등에는 한쪽 무릎을 꿇고 차를 공양하는 스님 상이 간주석으로 조각돼 있다.

석등 안 스님이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 또는 스님의 모친이라는 설, 그리고 스승과 제자라는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유추해 보건대, 삼층석탑 안의 비구니 상과 석등 안 스님은 어머니와 자식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처럼 설화적인 요소를 탑의 구성에 반영해 탑과 조각을 함께 어우러지게 한 매우 특이하면서 극적인 착상으로 이뤄진 탑이다.

네 마리 사자의 아래에는 네 면에 천인상을, 1층 탑신석에 인왕상과 사천왕상, 보살상 등을 수려하게 조각해 석조각과 불교미술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구례 화엄사는 국보 4점이 있는 천년 고찰로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고,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색다른 탑과 조각상을 만날 수 있는 드라마틱한 장소이다.

보수 공사가 끝난 사사자 삼층석탑은 높이가 7.1ｍ이며, 너비는 4.2ｍ이다. 무게는 약 50t이다.

<신광재 역사문화전문기자는 고려대에서 고고학과 한국미술사를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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