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마당]성공한 사람 / 수필 - 박안수 |
| 2021년 10월 25일(월) 19: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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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주변의 평범한 생선장수 아주머니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다 어쩌면 이 분도 성공한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한 사람이 꼭 어마어마한 업적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보통사람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깨우침이라고나 할까.
명절에는 집집마다 전을 부친다. 대개는 요리 실력은 없으나 꼼꼼하고 차분한 사람이 전판을 책임지게 된다. 널찍한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각종 전을 지져낸다. 집안에 퍼지는 기름 냄새는 입이 궁금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다. 전의 따끈하고 고소한 맛에 모두들 은근슬쩍 지나치며 한 개씩 집어가서 맛을 보느라 채반의 전의 개수는 엔간해서는 늘어나지 않는다.
언니가 부쳐내는 동태전은 유난히 맛이 좋았다. 명절 때는 동태전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특별히 내 몫을 따로 싸주기까지 했다. 얻어온 전은 냉장고에 넣어두고 아껴서 데워먹었다. 생선살이 쫀득하고 씹는 맛과 감칠맛이 있어서 입맛이 없을 때는 좋은 반찬이 되었다.
어느 해부터인가 언니의 동태전이 생선살이 푸석거리고 심심해졌다. 나는 전이 맛이 없어졌다고 나이 들어 손맛이 변한 것이 아니냐고 투덜대었다. 언니는 ‘이제 예전의 그 전은 먹을 수 없어’ 했다.
언니는 명절마다 오랜 단골인 아주머니에게서 동태포를 떴다. 대목인지라 아주머니의 단골들도 전감을 사기 위해서는 한두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시장의 다른 가게들에 들러서 볼일을 보고도 한참을 기다려서야 전감을 가져갈 수 있었다. 줄 선 사람들은 다 아주머니의 동태포가 특별히 맛있다는 것을 아는 셈이었다.
어쩌다 한 번 언니와 함께 동태포를 뜨러 갔다가 기다리기에 지쳐 짜증을 낸 적도 있었다. 전감 하나를 사는데 그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다른 가게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고 맛이 그렇게 차이가 날 것 같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수십 년 동안 시장의 좌판에서 생선을 팔았다. 자그마한 키에 항상 웃는 얼굴인 아주머니는 자신이 취급하는 생선에 자부심이 많으셨다. 오랜 세월 생선을 다룬 경험으로 맛이 좋은 동태만 미리 골라서 냉동고에 차곡차곡 모았다. 명절 대목이 되면 색깔이 검고 살이 탄탄한 동태를 깔끔하게 손질한 후 포를 떠서 소금 간까지 해서 바로 부쳐 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 덤으로 탕 끓여 먹으라고 포 뜨고 남은 뼈와 머리까지 꼭 챙겨주셨다. 귀찮아서 가져가지 않겠다고 하면 ‘맛있을 테니까 가져가서 끓여 먹어봐’ 하셨다. 아주머니의 말씀대로 탕은 맛이 좋았다.
나이가 많으신 어른이라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셨다. 곧바로 시장에 나오실 줄 알았는데 삼 년째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신다. 다시 생선포를 뜨러 시장에 나오실 건강은 안 되나 보았다.
명절이 되면 맛있는 전을 위해 백화점이나 큰 시장에 가서 신중하게 전감을 사와 보지만 결과는 늘 실패다. 예전의 그 맛이 나지 않는다. 내 입맛이 특별히 더 까다로워진 것은 아니니 생선의 맛이 떨어진 것이 원인일 것이다.
문득 아주머니는 참 성공한 분이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아주머니의 부재를 안타까워 하니 말이다. 거창한 일은 아니지만 생선장사라는 자기 일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았고 안심할 수 있는 맛난 먹을거리를 꾸준히 제공해 주셨으니 말이다.
성공이라는 것을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한 전문성을 가지고 일가를 이루는 것이라고 본다면 그 아주머니는 누구보다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보통사람들도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성공의 결과물이 파급력이 있는 업적을 이뤄낸 이들도 대단하지만 자기 분야에서 성실하게 일해 전문가가 된 보통사람들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박안수 약력>
▲한국문인협회회원
▲광주광역시문인협회회원
▲광주여류수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