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을 탄생시키는 사람들 / 천세진
2021년 11월 21일(일) 19:05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대통령 선거에 관심이 쏠려서인지 분분한 말들로 세상이 몹시 시끄럽다. 온갖 말로 세상이 분분한 것은 어제보다는 나은 선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선거 때마다 분분한 것은 민주주의의 특성 중 하나이지만 지금의 분분한 소리들이 정말 들을만한 것이고, 민주주의는 정말 최선의 제도이기는 한 걸까?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유명한 오역의 묘비명―실제의 의미는 다르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을 번역하면 “오래 살다보면,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지!”정도의 의미가 된다.―의 주인공인 조지 버나드 쇼(1856-1950)는 1903년 발표한 희곡 ‘인간과 초인’의 서문에 이런 글을 남겼다. “우리가 정치적 역량을 키우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로 망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더 오래된 대안들이 실패하는 바람에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채택하게 된 제도다. 독재주의는 유능하고 자비로운 전제군주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실패했다지만, 인구 전체가 유능한 투표자여야 하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갈 가능성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요즘 버나드 쇼의 물음이 너무도 통렬하게 와 닿는다.

온 세상을 평안하게 만들어준 정치제도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적이 없다. 어떤 정치제도도 세상을 평안하게 하지 못했다. 정치제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고 싶은 자들이 제도가 그늘을 드리우지 못하는 곳에 자신들의 소도(蘇塗·삼한 시대에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지내던 성지(聖地))·죄인이 이곳으로 달아나면 잡지 못했다)를 만들고 그곳에서 제도를 맹신하는 이들을 비웃는 풍경이 인류 역사 내내 이어졌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엉성한 정치제도의 천막 위에서 춤추는 자들이 있고, 천막 아래서 무너지거나 벗겨지면 끝장이라는 생각으로 천막을 떠받치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다. 왜 한번쯤 천막을 걷어치우고 세상의 진면목을 살펴보려고 하지 않을까. 천막 아래에서 아우성치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아둔한 형국인지를 왜 직시하려고 하지 않을까.

라이먼 프랭크 바움(1856-1919)의 ‘오즈의 마법사’에서 오즈의 마법사는 도로시 일행의 소원을 들어달라는 요구에 이렇게 홀로 푸념한다. “다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을 이렇게 하게 만드니 어떻게 내가 사기꾼이 안 되겠어?”서로 다른 것을 원하는데, 그 원하는 것이 서로에게 반하는 것이라면 소원을 들어주어야 하는 이는 마법사가 되는 동시에 사기꾼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떠받치고 있는 정치인은 점술가나 마법사가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각각의 것들을 모두 들어주리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내가 바라는 것이 다른 모든 이들이 바라는 것과 일치할 때에만 그나마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 서로 다른 것을 바라고 있다면 어떤 정치인도, 어떤 정치제도도 그걸 실현할 수 없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인류 역사에서 한 나라의 국민들 모두가 동일한 것을 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참 많은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 있었고, 이제 몇 사람이 남았다. 우리는 그들 중 한 사람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선택하는 이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수준의 미래를 만들 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사람들은 아주 오랫동안 선택받은 이들에게 책임을 물어왔다. 그러나 그건 정당한 일이 아니다. 선택 받은 자는 스스로 그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오르기를 희망한 것은 사실이지만, 선택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을 허락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버나드 쇼는 현상의 핵심을 꿰뚫었다. 오즈의 마법사도 역시 그랬다. 시스템이 무슨 잘못일까. 모든 시스템은 장단점이 있고, 장단점은 결국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존재인가에 의해 결정된다. 거대 양당의 두 후보를 비롯해 몇 사람을 놓고 대통령이 될 사람인지에 대해 따지고 있지만 국민들이 대통령을 뽑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건 대체 누구에게 묻고, 어떤 절차를 거쳐 뽑을 자격을 갖춘 사람들을 선별해야 하나? 어디에서도 답을 듣지 못할 것이어서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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