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의 광주땅 최초 이야기](30)법원·검찰청

1896년 전남도 재판소 설치…30개 군 관할
1919년 광주지방법원서 3·1운동 관련 104명 재판 받아
지검은 검사국·가정법원은 미군정청 소년심리원서 출발
등기소 1호 1943년 송정출장소…1948년 변호사회 창설

김경수 향토지리연구소장·문학박사
2021년 11월 25일(목) 19:49
1910년대 금남로 광주지방법원.(복전상점발행)
1489년 광주판관 우윤공이 화살에 맞아 부상을 입자 광주목이 광산현으로 강등된다. 1895년 형사1호 판결에 동학당 2인은 증거부족으로 무죄였다. 창평 상월정에서 공부했던 가인(街人)의 1957년 대법원장 퇴임사를 본다.

“그동안 내가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한 것은 전국 법원 모든 직원들께 지나치게 무리한 요구를 한 점입니다. 모든 사법 종사자께 굶어죽는 것은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부정을 저지르는 것보다 명예롭기 때문입니다.”

2019년 광주지방법원 준법로 건너편 동산초등학생들은 ‘전두환 물러가라. 구속하라!’고 외쳤다. 현재 광주고등·지방법원에 판사 25·113명 직원 87·345명, 가정법원 판사 7명 직원 60명, 고등·지방검찰청 검사 10·62명 직원 71·270명, 등기국 40명이 재직하고 있다.

광주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는 441명, 법무사회 법무사는 226명이다. 조선대는 1946년 광주야간대학원에 법학부를 설치하고, 1951년 법정학부를 만든다. 전남대는 1954년 법대,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을 개원한다.

광주최초 법원은 1896년 전라남도 재판소를 설치 30군, 1904년 여수군을 더해 31군을 관할한다. 1909년 광주지방재판소로 개칭한다. 청사는 도청구내 뒀다가 1908년 12월 객사를 수리해 옮긴다.

1912년 금남로3가 1번지 1.2㏊에 서양풍 함석 단층청사 892㎡과 관사 595㎡가 준공되고, 광주지방법원이 된다. 1917년 서양식 2층 양철지붕으로 개축하고, 판사 6명 중에는 채용묵이 있다. 1919년 3·1운동 관련 104명이 재판을 받았다.

1947년 광주지방심리원으로 변경, 이듬해 광주지방법원으로 환원한다. 광주고등법원은 1952년 대구고법에서 분립, 전국 세 번째로 선다. 지방법원 남쪽 금남로3가 4번지에 연와조 2층 건물에 든다.

광주지방검찰청은 1909년 광주지방재판소 검사국으로 출발한다. 1917년 금남로 광주지방법원 건물에 들어 1947년 광주지방검찰청으로 개명한다. 1952년 광주고법에 대응해 광주고등검찰청도 설치된다.
1980년대 말 지산동 법원·검찰청사.(사진으로 본 광주100년,1989)

증축공사 중인 광주지방법원과 고등법원.(향토지리연구소,2021)

광주지방·고등검찰청사.(향토지리연구소,2021)

1969년 지산동 342번지 일대에 광주지방·고등법원과 광주지방·고등검찰청이 나가 신법조타운을 열었다. 부지 4.2㏊에 6.611㎡ 철근콘크리트슬라브3층 건물이 등장한다. 1993년 고법은 지하1·지상6층 본관과 4층 법정동, 이듬해 지법은 지하1·지상6층 본관과 지하1·지상4층 법정동을 세운다.

광주가정법원은 1946년 미군정청 소년심리원에서 출발, 1948년 소년부지원이 되고, 1960년대 동명동 235·237번지에 있었다. 2001년 광주지방법원 가정지원이었다가 2011년 광주가정법원으로 승격된다. 2013년 7월 등기국 남쪽 치평동 1205-3번지 신축 건물로 이전한다. 관할구역은 소년 광주·전남, 가사가족관계등록 광주·나주·화순·장성·담양·영광·곡성이다.

검찰청사는 2001년 법원 북편에 지하2·지상9층 독립건물을 지어 옮긴다. 지검은 1-7층, 고검은 7-9층을 쓰고 있다. 2018년 광신프로그래스아파트단지가 된 산수동 58번지 일대 3.305㎡에 1974년 이후 광주지검장과 고검장 관사가 있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한 왕재일은 1961년 산수동 428번지에서 타계한다.

법원·검찰청 토지이력을 살펴본다. 금남로3가 1번지는 1912년 북성정 14번지로 1969년부터 30개로 분할돼 민간 소유가 된다. 1969년 말 1-11번지 1.391㎡은 충장로3가 6번지에 주소를 둔 광주은행이 소유자가 된다. 3-5번지는 소태동 722번지 광주천주교회유지재단 땅이 된다. 지산동 342번지는 1915년 금계리 한남수 1.566㎡ 밭이었다. 1931년 종연방적, 1935년 국유지가 됐다가 1970년 말 59.594㎡가 법무부 땅이 된다.

광주최초 등기소는 1943년 송정동 792-8번지에 광주지방법원 송정출장소로 출발, 1947년 송정등기소로 개칭한다. 1960년대 광산등기소가 되고, 1972년 신축당시 직원은 7명이다. 1992년 우산동 1601-7번지 새청사터에는 지금 우산동행정복지센터가 자리 잡고 있다.

1978년 서구청 서편 농성동 641-4번지에 개설된 서광주등기소는 1985년 쌍촌동 1004-10번지로 나간다. 1991년 우산동 632-2번지에 북구등기소도 개청한다. 2005년 12월5일 3곳 등기소를 통합, 치평동 1205번지 지하1·지상4층 건물에 광주등기국이 개원한다. 광역으로 전국 최초다.

광주지방변호사회는 1994년 지산동 법조타운 714-20번지에 지하2·지상6층 건물을 지었다. 1948년 40(광주24)명으로 광주변호사회가 창설, 1983년 광주지방변호사회로 개명과 함께 35년사를 펴낸다. 2011년 60년사도 발행한다. 광주법무사회는 대인시장 남서편 대인동 312-7번지에 있다. 1968년 광주사법사회는 금남로4가 51번지에 있었다.

지난해 이맘 때 광주지방검찰청이 전국 검찰청 가운데 처음으로 사건 관계인을 조사를 할 때 조서를 작성하지 않고, 심야조사도 없애기로 했다. 대신 수사담당 검사는 녹음·녹화를 활용, 증거 확보와 공판에 쓸 계획이다. 검경업무가 조정돼 검사가 기소와 재판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광주법원 종합청사 민원인 주차장 부지에 별관 건물 공사가 한창이다. 내년 완공될 건물은 연면적 1만1천880㎡으로 지하1(주차장)·지상6층 규모다. 국민학교 5학년 시절 담임선생님집과 고교시절 신법원 동쪽 같은반 조군 집에 자주 갔었다. 최근 구경한 문병란 시인집 골목에서 20m안 북편이다. 영화 검사와 여선생을 본다. 999년생 포청천이 그립다.

/김경수 향토지리연구소장·문학박사
김경수 향토지리연구소장·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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