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맞았네 / 퇴허자
2021년 11월 28일(일) 19:00
퇴허자 광주대각사주지 / 제주퇴허자명상원장
말은 언어(言語)라는 외투를 입고 소통의 다리역할을 한다. 또한 말은 곧 말하는 사람의 인품의 상징이며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내는 창조적 기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자주 사용되는 말은 날개를 달고 발전을 거듭하지만 자주 쓰여지지 않는 말은 자연 도태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나랏말쌈’을 소중히 여겼던 세종대왕을 우리가 공경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 아닌가 한다.

대한민국이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우리말과 우리글인 한글을 창제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세계 여러 나라들 가운데는 자국의 언어는 있지만 글자가 없는 나라도 있고 언어조차 없어서 영어로 대신하는 나라들도 꽤 많다. 말은 무엇보다 화폐처럼 사회의 윤활유 역할을 하면서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특성이 있다. 상대방과 말이 잘 통해 의사소통이 잘 이뤄지면 대인관계도 그만큼 원만하여 친밀도가 높아지지만 만약 그렇지 아니하면 불 꺼진 가로등길 같이 어둡고 암담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율곡은 이를 일러 “언로(言路)가 통하면 나라가 흥하고 언로가 막히면 나라가 망한다”라고 까지 말한 바 있다.

필자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언론홍보대학원을 다녔다. 그 덕분에 수필과 칼럼을 다듬어 쓸 수 있었고 인문학강의를 준비할 때도 강의원고를 작성하는데 매번 큰 도움이 되었다.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이론에 따르면 그 기본이 S,M,C,R,E의 법칙인데 여기서 S는 ‘전달자(Sender)’이고 M은 ‘메시지(Message)’이며 C는 채널(Channel), R은 수용자(Receiver), 그리고 E는 효과(Effect)를 뜻한다. 한 가지를 더 첨부하면 피드백(Feedback)이라 하여 수용자의 반응을 관찰하는 것이다. 또한 모든 대중매체는 대중을 상대로 소식을 보도(報道)하고 교양을 지도(指導)하며 오락(娛樂)을 제공하고 광고(廣告)를 전달하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처럼 말은 섬세하면서도 사람의 감정과 직결되어 때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는가 하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불쾌감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역반응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예부터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는 선비의 기본정신을 강조해 왔는데 이는 몸가짐과 말씨와 글과 판단력을 신중 하라는 거다. 또한 말은 어떤 상황을 표현할 때 거기에 맞는 단어는 둘도 아닌 딱 하나밖에 없다. 만약 비슷한 용어를 끼워 넣으면 의미전달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말은 참으로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논리 정연한 아름다운 도구다. 지방마다 따로 전래되는 방언(方言)도 그 지역의 특성과 풍습이 깊숙이 스며있어서 함부로 소홀히 할 수 없다.

제주어의 “혼저 옵서예”나 “폭삭 속앗수다”와 같은 말은 다른 말로 어떻게 대치하겠는가? 만약 “어서 오십시오”나 “매우 수고 하셨습니다”로 바꾼다면 이미 제주의 맛을 잃어버리고 말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만큼 언어가 지니고 있는 예술성은 무궁무진하고 그 깊이를 헤아리기가 참으로 어렵다. 말은 내 안에 있을 때는 내 것이지만 입 밖으로 나오면 이미 남의 것이다. 오늘 여기에서 얘기되는 “수지맞았네”는 과연 무슨 뜻일까? 가수 김국한의 ‘타타타’에서 등장하는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가 있다. 그렇다면 “수지맞는 장사”는 수입과 지출이 잘 맞아서 손해보지는 않았다는 의미인데 왜 우리는 마치 “대박쳤네”라는 말로 써 왔을까? 생각할수록 참으로 묘한 말이다.

옛 우리는 농경사회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오직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곧 농사가 오직 천하의 근본이라는 신념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만약 삼재(三災)로 인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되면 그 해는 가난과 궁핍속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가뭄과 태풍, 물난리를 피해서 한 해의 농사가 풍년이 들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겠는가. 그러므로 투자된 농비(農費)만이라도 건진다면 그것으로 “수지(收支) 맞았네”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수지 맞았네”라는 말은 농경문화에서 탄생된 무척 ‘서글픈 말’이라는 생각을 접을 수가 없다.

아직도 우리 삶은 코로나19와 같은 재앙을 맞아 힘겹고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거기에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파렴치한 무리들에 의해서 ‘대장동 개발 특혜의혹’과 같은 인재(人災)까지 겹친다면 얼마나 가슴아픈 일인가.
이 기사는 광주매일신문 홈페이지(www.kjdaily.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kjdaily.com/1638093656561402028
프린트 시간 : 2024년 02월 25일 09:5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