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설 몇 마디 - 박덕은 문화평론가 |
| 2021년 12월 20일(월) 18:56 |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흰 손의 겨울을 그대라 칭하고 있다. 백설처럼 흰 그대, 눈송이로 날아와 시적 화자의 마음에 닿으려 한다. 그대 흰 손의 겨울을 만나면, 시적 화자는 한 송이 백설 같은 겨울이 되고 만다. 그런데, 그대는 백옥처럼 차다. 별빛으로 떨어져 발자국마다 고이는 그대, 그대를 안으면, 아픈 이름의 백옥 같은 사랑이 된다. 사랑하고픈데, 영원히 하나되고픈데, 차가와서, 아픈 사랑이라서, 아름답지만 하나되지 못하고 있다. 이 땅의 사랑, 아름답지만 하나되지 못하고 슬퍼하는 사랑, 그 사랑, 그 연인들의 아픔과 아쉬움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시 ‘무등산 아래 앞산이’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무등산 아래 앞산을 실감나게 그려놓고 있다. 무심코 앞산에 흰 구름이 내려오니, 한 계절이 지났다. 높은 산보다는 더 나이 든 낮은 앞산이 자비로운 어머니 같다. 촉촉한 가을비가 내린 뒤, 가을 소리는 정열의 옷을 입는다. 그때 병풍 된 능선은 가을이 잘 익어 붉게 멍든 예술이 된다. 형형색색 불타는 시의 언어들, 다산의 붉은 서첩이 된다. 시어의 배치, 시적 형상화, 이미지 구현, 낯설게 하기 등이 아주 적절히 배치되어 있어, 시의 감칠맛을 더해 주고 있다. 이런 미적 가치의 그릇에 담긴 감성을 맛보는 우리 독자들은 참 행복하다.
▶시 ‘한낮에 우는 닭’
이 시에서의 시적 화자는 진화 중인 읍내, 그곳의 한 가정을 들여다보고 있다. 논들이 메워지느라 트럭들이 부산히 움직이는 읍내, 널찍한 신작로가 뚫리는 거기, 한 노인의 집에 서울에 사는 사위와 딸이 내려왔다. 그동안 아무 소식 없던 아들과 며느리도 내려왔다. 평소 칼바람 소리, 메마른 기침소리만 들리던 음산한 집이 요즈음 북새통이다. 돈다발을 밝히는 자식들이 금이 간 벽돌담 밑 텃밭을 파헤치는 노인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놓고 있다. 그래서 노인은 참다 못해 벼락 같은 고함을 내지른다. 그때 쪽마루 위로 허연 낮달이 뜨고 있다. 풍자 속에서 빛을 발하는 시적 형상화가 슬프도록 아름답다. 이미지가 빚어 놓은 씁쓸한 뒷맛과 아름다운 시의 맛이 어우러져, 시라는 미적 가치의 그릇에 고즈넉이 안기고 있다.
▶수필 ’꽃 밟는 일을 걱정하다’
이 수필에서 서술자는 낙화 속에서 꽃 밟는 걸음걸이를 걱정하고 있다. 꽃잎이 떨어져 낱낱이 겹겹이 수북수북 쌓여 있는 꽃길, 거기서 발 디딜 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작가, 희고 둥글고, 여리고 부드러운 꽃잎을 우악스러운 군홧발 같은 운동화로 어찌 밟을 수 있단 말인가. 지레 놀라 비틀거리는 마음, 그 순간 꽃들도 움찔 몸을 떨고 있다. 가까이에 벤치가 하나 있지만, 애먼 엉덩이 탓하며 앉지 못한다. 그때 떠오른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 사뿐히 즈려밟고 가라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사랑한다면, 어찌 밟고 갈 수 있겠는가. 어느 순간, 내려다본 발가락, 엉덩이, 최대한 무게를 줄이고 싶어진다. 꽃길 걷는 건 사양하고 싶다. 그 대신, 나비처럼 날아서 사뿐히 그대에게로 가고 싶다. 작가의 섬세한 마음, 느낌, 감성, 그 속으로 흐르는 아름다움, 미적 가치를 마음껏 맛볼 수 있어, 독자들은 마냥 향긋한 행복 속에 잠겨든다. 이런 수필을 감상하고 그 미묘한 감성 속으로 잠시 잠기는 시간, 마음속이 은은히 향긋해져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