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38)

화폭에 들어앉은 줄을 내 어이 알 수 있었으리

2022년 01월 04일(화) 19:22
漁父詞(어부사) / 서호주인 이총
늙은이 낚싯대에 잠 맛이 기막힌데
낚시에 걸린 물고기 느끼지 못하니
화폭에 들어앉은 줄 내 어이 알리오.
老翁手把一竿竹 靜坐苔磯睡味閒
노옹수파일간죽 정좌태기수미한
魚上釣時渾不覺 豈知身在畵圖間
어상조시혼불각 기지신재화도간


초나라 굴원은 어부사에서 동정호 호반을 초췌한 모습으로 걷는 굴원과 노를 젓는 어부와 나누는 대화다. "내가 듣기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갓의 먼지를 털어서 쓰는 법이고, 몸을 씻은 사람은 옷의 먼지를 털어서 입는 법이거늘 어찌 깨끗한 몸으로 오물을 뒤집어쓴단 말이오, 차라리 상강에 뛰어들어 고기밥이 되겠다"고 했다. 늙은이 낚싯대를 손에 잡고, 이끼 덮인 낚싯대에 호젓이 앉으니 잠 맛이 기가 막힌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화폭에 들어앉은 줄을 내 어이 알 수 있었으리(漁父詞)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서호주인(西湖主人) 이총(李摠:?∼1504)으로 조선의 문신이다. 다른 호는 서호주인(西湖主人), 구로주인(區鷺主人), 월창(月牕) 등으로 쓰인다. 태종의 증손으로 무풍부정에 봉해졌다. 무오사화 때 유배되고 갑자사화 때 부자가 처형됐다. 청담파의 중심인물로 시문에 능하고 필법에 뛰어났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늙은이 낚싯대를 손에 잡고 / 이끼 덮인 낚싯대에 호젓이 앉으니 잠 맛이 기막히구나! // 낚시에 물고기 걸린 줄은 느끼지도 못하니 / 화폭에 들어앉은 줄을 내 어이 알 수 있었으리]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어느 어부의 노래’로 번역된다. 낚싯줄을 물속 깊이 드리워 놓고 하염없는 생각에 잠긴 나머지 꾸벅꾸벅 조는 경우가 있다. ‘강태공’이 아니라 아마 ‘잠태공(?)’은 아닐는지 모르겠다. 쏟아지는 졸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시적 구성의 어느 면을 보아도 고개가 끄덕여 지는 멋진 점이다. 비유법 구성도 독특해 보인 시상 주머니다.

시인은 이와 같은 시상 주머니를 꼬기작거리는 모습을 감지하면서 맛과 멋에 감동한다. 늙은이는 낚싯대를 손에 잡고 이끼 덮인 낚싯대에 호젓이 앉으니 그 잠 맛이 기막히다고 했다. 참으로 기막힌 낮잠이었음을 느끼게 한다. 호젓하게 꾸벅이는 낮잠이 하늘을 몇 번이나 날았을까?

졸고 있는 시인의 등을 살며시 두드리는 화자의 모습이 깊게 감지되는 순간은 고기가 걸린 줄로 모른 그 장면이 너무 또렷해 보인다. 낚시에 물고기가 걸린 줄은 느끼지도 못하니, 내 어찌 화폭에 들어앉은 줄 어이 알 수 있겠는가 라고 했다. 고기를 잡으러 왔던 어옹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행여 지금 나는 신선의 세계는 아닌가, 그림의 세계는 아닐까’하는 생각에 젖는단다.

※한자와 어구

老翁: 어옹. 늙은이. 手把: 손에 잡다. 손에 쥐다. 一竿竹: 한 낚싯대. 靜坐: 조용하게 앉아있다. 苔磯: 이끼긴 물가. 睡味閒: 한가하기 그지없는 잠 맛에 취하다. // 魚上釣時: 낚시에 고기가 걸리다. 渾不覺: 혼미하여 깨닫지 못하다. 豈知: 어찌 알까. 身在: 몸이 ~에 있다. 畵圖間: 그림 가운데 있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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