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보는 명화이야기]시작(Start) 1월, 한 해의 시작

새로운 출발선에 선 모든 이들의 ‘꿈’을 응원합니다

2022년 01월 06일(목) 19:40
클로드 모네 作 ‘인상, 해돋이’ <위키피디아 검색>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1월과 함께 임인년의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근 2년이 돼가는 코로나19와 끝날 줄 모르는 변이바이러스까지…. 우리 일상을 완전히 뒤바꿔버린 전염병의 창궐로 인해 그간 제약이 많았던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 흔한 여행 한 번 가는 것이 소원이 될 정도로 많은 변화를 겪어야 했고, 두려움을 뒤로하고 백신 접종도 다 마쳤건만 아직 여행은 훗날을 기약해야 하는 일인 듯하다.

또 한편으로는 다사다난했던 2021년을 마감하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며 각자가 실천할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마음을 다지며 재도약을 위한 준비를 한창 하고 있을 시기이기도 하다.

독자들의 신년 계획은 얼마만큼 구체화됐는가? 필자도 러프하게 세워둔 연간 계획은 어느 정도 잡힌 상태이다. 한 해의 시작점에서 해보는 다짐처럼 올 한 해도 계획했던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잘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맘때면 뜨는 해를 보면서 새해맞이를 위해 흔히들 산으로, 바다로 향하고는 한다. 비록 날마다 뜨는 것이 해이고, 해돋이 순간이 찰나일지라도 가슴에 오래오래 남겨지는 여운 때문에 보고자 하는 것인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전국의 해돋이 행사가 대부분 취소돼 조금 아쉽기도 했다.

전처럼 대규모 행사와 함께 성대하게 해돋이를 볼 수는 없었지만, 모네의 그림으로나마 대신해 보려고 한다.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 속 자욱한 안개가 낀 새벽을 막 지나 바다 위로 떠오른 해의 모습은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까지도 함께 희망으로 가득 차게 하는 기분이다.

모네가 1872년 ‘르 아브르’에 방문했을 때 본 항구의 풍경을 그린 이 작품에서 해는 주황색으로 표현돼있다. 그리고 물결 위 짧은 붓 터치로 묘사된 해의 그림자는 푸른 계열의 동색으로 색칠된 하늘과 바다를 구분 지어내고 있다.

더불어 해 밑으로 묘한 색채 속 안개에는 항구에 정박한 선박들과 선상 기계들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어 고요한 바다의 아침 모습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묘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는 모네의 그림에서 바로 ‘인상주의’라는 말이 나오게 됐다.

1874년 모네를 포함한 르누아르, 드가 등 인상파 화가들이 주축이 되어 개최했던 ‘앙데팡당전’에서 처음 선보인 이 작품은 비평가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다.

야외로 나가 시간의 순서에 따라 변하는 빛의 순간을 포착하고자 했던 인상주의 화가들의 빠른 붓 터치와 묘사방법은 스케치만 해놓은 듯 완성도가 떨어져 보인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하지만 이런 비판에도 그들은 결코 굴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이 의도한 대로 기존의 관습을 확실히 타파했다며 자랑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이렇게 그들의 비상한 용기는 기존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양식을 사람들에게 선물했고, 미술사에 있어서도 또 하나의 흐름을 형성해 낸 계기가 됐다.

1월은 영어로 ‘January’로 이는 ‘야누스의 달’을 뜻하는 라틴어와 로마신화의 야누스(Janus)신의 이름에서 기원한 것이다.

일 년 중 첫 달을 가리키는 야누스는 ‘시작과 전환의 신’으로서 성의 입구나 문 앞을 지키고선 두 얼굴을 가진 신을 말하는데, 문을 지키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뒤통수가 없이 얼굴만 앞, 뒤로 붙어있는 형상이다.

일반적으로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조각상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때론 4개의 얼굴을 한 석상도 찾아볼 수가 있다.

1년이 끝나고 다시 새해가 시작되는 경계 시점에 자리하고 있는 야누스 신은 그 순간을 상징하기 위해서 두 개의 얼굴을 하고 앞뒤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작을 나타내는 데서 모든 사물과 계절의 시초를 주관하는 신으로 숭배되고 있다.

또한 야누스는 ‘문’을 가리키는 단어 ‘janua’와 연관이 있기도 하다. 문을 지키고 선 문지기 신 야누스는 시작과 끝의 경계에 선 모습을 통해서 지나간 것에 후회하지 말고, 이롭지 못한 부분을 반성하고 새롭게 시작될 앞날을 올바르게 걸으면 된다는 로마인의 지혜도 보여주고 있다.
니콜라 푸생 作 ‘세월이라는 음악의 춤’ <위키피디아 검색>

그리스 신화에 대응하는 신이 없는 ‘유일한 로마의 신’ 야누스는 석상의 모습 그대로 화가 푸생의 ‘세월이라는 음악의 춤’에 등장하기도 한다. 철학적 상징이 많이 담긴 이 그림을 보면 먼저 화면의 중앙에서 춤을 추고 있는 네 사람이 보인다.

왼편의 파랑색 옷을 입고 미소를 띠고 있는 여인은 쾌락을 상징한다. 그 옆으로 흰옷에 진주 관을 쓴 여인은 부를 상징하는데 쾌락과 부는 연관이 있다는 듯 둘은 손을 꼭 잡고 있다. 그다음 오른편에 수수한 차림의 여인은 가난을 가리키는데 부의 손을 잡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다. 그 뒤로 월계관을 쓰고 춤을 추는 남자는 근면을 나타내는데 부를 위해서는 성실해야 함을 은연중에 비치고 있다.

그림은 인생 속 공공연히 펼쳐지는 이런 과정을 흥겨운 춤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삶이라는 운명 앞에서는 한낱 부질없는 것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게다가 화면 좌측의 두 얼굴의 야누스 석상은 이 모든 상징을 담고서 세워져 있다. 독특한 점은 석상의 목에 건 꽃이 눈에 띄는데 화려함을 가진 꽃이 금방 시들어버리듯 인간의 욕망도 일시적임을 가리키며, 이는 삶을 살아갈 태도에 대해 다시금 상기해 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야누스 석상.<구글 검색>

이렇게 상서로운 의미들과 더불어 로마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신 야누스는 한편으로는 이중성을 뜻하는 좋지 않은 의미로도 사용되기도 하는데 어쩌다가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게 됐을까?

오해가 시작된 것은 18세기 무렵으로 “야누스는… 한쪽 얼굴로는 억지 미소를 짓고 다른 얼굴로는 노여움을 드러낸다.”는 앤서니 애슐리 쿠퍼라는 철학자의 표현 이후이다. 그 뒤로는 야누스라는 명칭에 부정적인 뉘앙스가 묻어나기 시작했고 종종 좋지 않은 표현을 쓸 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현남·전남대 미술이론 박사수료>
원래는 청년과 노인의 상반된 이미지를 품은 야누스의 두 얼굴은 시작이자 마무리 그리고 늙음과 젊음처럼 상반되는 존재들 간의 조화를 부여하는 상징이다.

양극단의 조정자로서 숭배받으며 로마인에게 삶의 지혜를 선사했던 신으로서 오늘날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1월을 맞아 한 해를 넘기며 또한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다.

마지막이 어쩌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모쪼록 2022년 한 해도 야누스에 담긴 로마인의 지혜를 되새기며 잘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독자분들의 1월도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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