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인화의 '5월이야기']시대의 어머니, 배은심여사 |
| 2022년 01월 13일(목) 1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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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세월호 유가족이 5·18묘역을 방문했을 때 이한열 어머니 배은심 여사는 “30년을 살다 보니까, 살아온 것도 허무하고 이렇게 왜 살고 있나를 내가 나한테 물어보고 싶고 괴롭습니다. 세월이 간다고 잊힌 것도 아니고 없어진 것도 아니고 어딘가 모르게 끌려갑니다. 당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는데 여러분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걱정이 됩니다. 누군가가 죽은 이한열이 불쌍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짊어지고 살아갈 애미가 불쌍하다고 합디다. 죽은 사람은 모른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모른대요. 와서 불러도 몰라요. 말도 없어요.” 6월 항쟁이 시민들에게는 가슴 뜨거운 역사이지만 유가족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긴 긴 세월동안 상처와 아픔을 견뎌야 하는 것은 고스란히 유가족들의 몫이었다. 그 이후 매년 이한열 추모식 때 망월묘역을 찾았다. 그리고 제주 4·3 때도 배은심여사와 함께 갔다. 그때 동행했던 필자의 딸에게 배여사는 “우리 한열이도 살아있으면 엄마랑 같이 다닐텐데” 했다고 했다. 마음 한 켠이 아렸다. 딸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뒤로 가끔 통화를 했었다. 병원에서 지낼 때도 전화는 씩씩하게 받으셨다.
9일 소식을 듣고 한 달음에 조대 병원으로 직접 달려간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민주인사들을 봤다. 10일 출근하자마자 우리 5·18 민주화운동기록관 식구들과 같이 조문을 했다. 빈소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인연을 맺은 조문객들이 많았다. 1970년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산화한 전태일 열사의 친동생 전태삼씨,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5·18유공자단체, 5·18기념재단,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등 수많은 분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1987년 6월 항쟁을 그린 영화 ‘1987’의 장준환 감독, 강동원 배우도 다녀갔다. 근조화환도 참 많았다. 추도의 밤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11일 5·18민주광장에서 하는 노제에도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식구들과 함께 참석했다. 칼바람에도 많은 추모객이 함께 했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듯 새벽부터 눈이 내렸다. 이한열기념사업회 이경란 관장님이 사회를 보면서 “35년 동안 민주화에 헌신했던 배은심 어머니는 이름이 두 개입니다. 이한열 어머니와 배은심 어머니입니다”로 시작하고 조사와 영상이 틀어지고 유가족을 대표해 장녀인 이숙례씨는 “엄마” 부르면서 “엄마는 한열엄마, 숙례엄마,…오남매의 엄마 배·은·심 우리 엄마이지만…3일동안 함께해주신 여러분을 뵙고 보니 수많은 분들의 마음과 기억속에 너무나도 크게 만인의 어머니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엄마가 내 엄마여서 행복했습니다. 이제 아버지도 만나시고, 한열이와 영면하세요. 삼일 동안 장례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눈도 내리고 춥네요, 엄마.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분이 모여 있어요. 저는 항상 엄마 마음을 아리게 했어요. 아들 가슴에 묻고 35년을 사셨던 엄마. 아들 보고 싶어 부르던 피맺힌 절규도 이젠 들을 수 없겠네요”, “한열아 엄마가 아버지곁으로 가셨어”라며 눈물을 훔쳤다. 5·18민주광장 곳곳에서 훌쩍이고 울먹 울먹했다.
배은심 어머니는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로 평생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시대의 어머니’다. 민주·인권운동에 헌신해 민주화 운동가로 거듭 태어났다. 아들을 가슴에 묻고 민주화운동에 투신하며 모두의 어머니로 우뚝 섰다. 현대사의 한 가운데서 용감하게 떨쳐 일어선 배은심 어머니의 이야기는 누가 들어도 가슴먹먹한 사연이다. 그게 또 어떻게 기록되느냐가 역사가 된다. 기록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그 역사가 똑바로 세워지기 위해 우리가 눈 부릅뜨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들을 묻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힘썼던, 배은심 어머니 가슴에 든 멍이 풀어질 게 아닌가. 기록작업에 최선을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