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40)

담장 머리 달빛 아래 홀로 먼저 피었구나

2022년 01월 18일(화) 19:18
惜鄕梅(석향매) / 유한당 홍원주
천리 먼 곳 가고픈 마음 외로운 매화
담장 머리 달빛 아래 홀로 먼저 피는데
봄비는 누구를 위해 밤마다 꿈이로다.
千里歸心一樹梅 墻頭月下獨先開
천리귀심일수매 장두월하독선개
幾年春雨爲誰好 夜夜隴頭入夢來
기년춘우위수호 야야롱두입몽래

요즈음 도심에 사는 사람들은 고향에 대한 애착이 없다. 애향심이 옅은가 했더니만 애국심도 예전 같지는 않다. 너와 나의 더불어 사는 준거집단이란 의식도 없고 오직 나라는 얄팍한 생각에 젖어 있는 사람이 많다. 이 모두는 태어난 고장을 모르기 때문이다. 향수도 없고 고향에서 같이 자라난 매화를 아끼는 마음이 우러나지 않는다. 봄비는 몇 년이나 누굴 위해서 좋아했던가, 밤마다 고개 머리에서 꿈이 들어온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담장 머리 달빛 아래 홀로 먼저 피었구나(惜鄕梅)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유한당(幽閑堂) 홍원주(洪原周:1791∼?)로 조선 후기의 여류시인이다. 홍석주와 홍길주의 누이동생이며, 숙선옹주와 혼인한 영명위인 홍현주의 누나로 알려지며, 형제 모두가 당대의 큰 선비요 문장가들이었던 집안이 벌쭉한 인물이다. 그의 어머니 영수각을 닮아서인지 시재가 뛰어났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천리 먼 곳 가고픈 마음 한 그루 외로운 매화나무 / 담장 머리 달빛 아래 홀로 먼저 피었구나 // 봄비는 몇 년이나 누굴 위해 좋아했나 / 밤마다 고개 머리에서 꿈이 들어오는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매화를 아끼는 마음으로’로 번역된다. 매화의 칭찬을 그만 늦춰 놓기에는 마음이 섭섭했음이 감지되는 시상을 만난다. 그래서 사대부 시인이나, 여항시인을 막론하고 매화를 예찬하는 시를 읊었다. 어디 그 뿐인가. 여류시인까지 매화 예찬하기에 가세했었으니 매화는 사람 시심을 끌어당기기에 자석과 같은 매력을 가졌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시인은 멀리 있는 매화일수록, 담장가에 외롭게 있는 매화일수록 더욱 마음 끌렸음을 본다. 천리 먼 곳 가고픈 마음 한 그루 외로운 매화나무를 생각하면 고향의 담장 머리 달빛 아래 홀로 먼저 피었다고 했다. 외로울 때, 그 향을 맡고 싶을 때마다 매화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음을 떠올리고 있다.

화자는 아련한 고향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매향의 긴한 내음에 흠뻑 취했음을 알게 한다. 봄비는 몇 년이나 누구를 위해 좋았던가를 생각해 내면서 밤마다 매화 피어 있는 고개 머리에서 꿈속에 들어 안다고 했다. 봄비가 내리면 춤이라도 출 양으로 매향을 생각하고, 봄이 돌아오면 행여나 다른 일은 없었던가를 생각하면서 매화의 안부가 궁금했었음을 떠올린다.

※한자와 어구
千里: 천리. 歸心: 고향으로 가고픈 마음. 一樹梅: 한 그루 매화. 墻頭: 담장 머리. 月下: 달 아래. 獨先開: 홀로 먼저 피다. 幾年: 몇 년이나, 春雨: 봄비. 爲誰好: 누구를 위해 좋아했나. [誰] 때문에 의문사로 쓰임. 夜夜: 밤마다. 隴頭 고개 머리에서. 入夢來: 꿈에 들어오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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