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설 몇 마디 - 박덕은 문학평론가

2022년 02월 21일(월) 18:59

▶시 ‘어떤 하루’
김용국 시인의 시 ‘어떤 하루’에서의 시적 화자는 평범한 일상은 없다고 토로한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있을 수 없고, 어제와 같은 생각도 있을 수 없다 한다. 때론 비굴하기도 하고, 때론 뿌듯하기도 하지만, 결국 안개가 걷히고 붉은 태양이 솟아오른다고 방향을 잡는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진리의 길을 찾아내고 있다. 그 길은 안개 낀 새벽부터 어둠이 내려앉은 밤에도, 호롱불 역할을 해주고 있다. 시적 화자의 깨달음처럼 평이한 시간의 한쪽에는 익숙지 않은 궤도가 숨어 있다. 그 궤도를 걷다 보면 발이 시린 비참함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내일은 내일이라는 생의 궤도를 밝게 비추는 붉은 태양이 떠오르기에 걱정할 것 없다. 이렇듯, 시 속에서의 발견된 깨달음은 우리 인생의 은은한 활력소가 되어 주니, 이 또한 행복 요소가 아니겠는가.

▶시 ‘보성 다원’
김영임 시인의 시 ‘보성 다원’에서의 시적 화자는 노을 지는 보성의 다원에서 체험한 감성 세계를 시적 형상화해 놓고 있다. 푸른 다원이 참나무 숲을 흔들고, 푸른 눈 푸른 숲 그 향기는 멀리 갈수록 맑다. 은은한 다기에는 따끈한 그리움이 고이고, 사색에 잠기는 푸른 설록 그 한가운데, 그대 그림자가 떠오른다. 시적 화자는 녹차 한 잔에 보고픔의 향내를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우려낸다. 우려내는 동안 봄잎 같은 그대가 떠올라 자꾸만 그립다. 잔잔한 온기에 그리움의 노을이 붉다. 이처럼 곱고 우아한 감성이 이미지의 그릇에 담겨 있다. 시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감성을 아름답고 향긋이 빚어내는 세계, 그게 이 시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시 ‘곰배령 가보기’
일상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산속이나 곰배령에서 만날 때가 있다. 아름다움은 눈꽃, 바람꽃 같은 신의 모습으로 다가와 내밀한 평화를 슬쩍 보여주고 사라진다. 그리하여 다음에도 또 그곳을 찾게 한다. 이처럼 아름다움과의 만남은 신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김경선 시인의 시 ‘곰배령 가보기’에서의 시적 화자는 신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아름다움을 만나며 곰배 언덕을 오르고 있다. 그곳 하늘은 눈꽃이고, 눈벌만큼 하늘이 안기는 곳이다. 나목 바람의 춤사위 흔들어 불려 나온 고갯길은 아득하지만, 오를수록 눈물꽃은 무한히 피어난다. 마치 천상의 화원인 듯하다. 거기 바람꽃이 함께 오르고 있다. 이미지 구현이 시의 맛을 한층 맛깔스럽게 해놓고 있다. 이미지가 살아 있어, 읽는 독자의 감성도 덩달아 싱그럽다.

▶수필 ‘찰나의 망각’
건망증은 짧은 순간 기억이 방전된 배터리와 같아서 기억을 충전할 수가 없다. 건망증이 생기면 깜박 나를 잊어버리기에 얼떨떨한 빈 몸으로 우왕좌왕해야 한다. 어딘가로 뛰쳐나가 돌아오지 않는 나를 막막하게 기다려야 한다. 문예자 작가의 수필 ‘찰나의 망각’에서의 서술자는 건망증 체험담을 통해 사색의 공간을 마련해 놓고 있다. 어딘가로 뛰쳐나가 돌아오지 않는 나를 기다릴 때의 당황스러움을 얘기하고 있다. 기억의 바깥에 갇혀 기억의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는 순간들을 풀어놓고 있다. 다락에 놓여 있는 쥐약 바른 비스킷을 손녀가 먹었을 때 무작정 손녀를 업고 병원으로 뛰어갔던 때의 얘기, 동생이 해외여행 다녀온 뒤 문제의 지갑을 되찾은 얘기, 본인이 외출할 때 핸드백을 찾아 헤매던 얘기, 핸드폰을 놔두고 외출했던 때의 답답했던 얘기. 이런 얘기들의 공통점은 건망증 때문에 몹시 곤혹스러웠다는 기억들이다. 읽으면서,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수필의 효용성은 여러 각도로 인생을 바라보며, 공감하고, 이해하고, 새로운 방향과 나아갈 깃발을 찾아보는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 수필은 잠시나마 우리에게 웃음과 해학과 위로를 안겨 주고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