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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설 몇 마디 - 박덕은 문학평론가

2022년 03월 07일(월) 19:12

▶시 ‘숫돌’
김병중 시인의 시 ‘숫돌’에서의 시적 화자는 숫돌에 대해 애정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숫돌을 통해 삶을 대하는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말해 주고 있다. 삶의 고비마다 물러서지 않고 단단한 아집들을 깎고 깎으며 자신을 다스리는 숫돌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정진하는 수행자 같기도 하다. 삶의 고비 같은 칼이 시퍼렇게 날 세울 때, 숫돌은 살 깎이는 고통을 느낀다. 숨 다하는 고비 가운데서 심장에 움트는 자아, 생애 끝 눈물도 앙상한 몸피에 눈빛만 형형한 깨달음 하나, 반짝인다. 삶을 옥죄이는 고삐에 숨통이 막혀 와도 울음의 끝자락에서 피어나는 깨달음 하나가 있기에 수행자는 그 길을 걷는지도 모른다. 수행자의 길을 걷는 숫돌에 대한 예리한 관찰력과 인식이 독자의 폐부를 찌릿 찌르고 있다. 낯설게 하기의 신선함이 돋보인 시, 짧은 시 속에 응축해 놓은 생의 의미, 기시감 없이 신비스럽게 다가서는 시적 형상화가 독자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고 있다.

▶시 ‘까치 집’
이철호 시인의 시 ‘까치집’에서의 시적 화자는 참나무 꼭대기에 집을 짓고 있는 까치를 시적 형상화해 놓고 있다. 삭정이 입에 물고 분주하게 들락날락하는 까치,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까치집, 공중을 똑 부러지게 움켜쥐고 있는 까치집이 믿음직스럽다. 그 까치집에 입주한 새댁 까치가 알을 품어, 까치새끼들이 알 깨고 나와, 세상 구경 먼저 하겠다고 옹알옹알 아우성이는 모습을 떠올리고 있다. 집은 생명의 탄생을 준비하는 첫 단추와 같기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까치의 날갯짓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인구 절벽을 걱정하는 우리 사회에서도 갓난아기의 옹알옹알 소리처럼 듣기 좋은 소리가 또 어디에 있을까. 새 생명을 기다리는 까치집과 신혼집이 중첩되면서 반가운 소식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들렸으면 좋겠다. 까치와 까치집과 까치새끼들을 바라보고 상상하는 시적 화자의 시선에서 따스함이 느껴진다. 인간의 감성을 따스하게 품어 주며 이끄는 시의 특질이 함께하고 있어, 행복하다.

▶시 ‘붉은 돼지집을 전망한다’
공포에 휩싸이면 사람은 사람을 만나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위로를 받으며 힘을 얻고 싶어 한다. 하지만 코로나라는 공포는 그 만남까지 차단시켜 버렸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우리 눈앞의 이웃들을 밀어내고 있다. 코로나는 사람들의 가슴에 아픔이라는 잉걸불을 지르고 있다. 조경환 시인의 시 ‘붉은 돼지집을 전망한다’에서의 시적 화자는 아픔이라는 잉걸불을 안고 있는 붉은 돼지집을 관찰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 돼지집 화덕의 잉걸불은 만남을 꽃피우며 안부를 궁금해하는 따뜻한 잉걸불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서로에게 다가가는 잉걸불은 코로나로 인해 꺼지는 날이 많아져, 급기야 돼지집 주인의 아픔을 불태우는 잉걸불이 되었다. 잉걸불이라는 의미의 이동이 시 속에 잘 녹아 있어 슬픔이 매만져진다. 코로나로 손님이 뜸한 식당의 주인은 가슴속에 아픔 많은 잉걸불을 안고, 지나는 사람마다 식객으로 점찍어 대며, 힘들게 하루 하루 보낸다. 오랜만에 손님들을 맞이한 식당 주인의 환한 낯빛, 가슴속 불, 얼굴의 붉은빛, 시적 화자의 선의 등이 한데 어우러져 요즘 세태를 여실히 그려내고 있다. 그 속으로 흐르는 슬픈 미소가 느껴져 씁쓸한 뒷맛을 느끼게 한다. 붉은 돼지집 정경을 통해 점점 힘들어하는 서민들의 삶을 간접 체험하게 하는 시적 형상화와 이미지 구현이 싱그럽다.

▶수필 ‘안개 속을 걷다’
우리의 깨달음, 그 길은 산에서 시작하고 산에서 완성된지도 모른다. 산은 사람들의 물음에 답하느라 안개를 불러오고 쪽문 같은 오솔길을 열며 흩어진 몸 매무새를 정돈하느라 바람을 데려온다. 유순남 님의 수필 ‘안개 속을 걷다’에서의 서술자는 봉화산 천제봉을 오르고 있다. 서울 친구들에게 안내할 등산 코스를 미리 점검해 보기 위해서다. 산 입구 배성금에 이르렀을 때 성난 파도를 보게 된다. 안개에 싸인 산행길, 2미터 반경밖에 볼 수 없어 답답할 때, 찬란함을 꿈꾸던 젊은 날을 떠올린다. 삼거리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안개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이윽고 확 트인 천제봉에 다다르게 된다. 모든 게 자기로부터 시작된 듯한 느낌, 거기서 자유로움을 만난다. 돌단에 누워 바라본 하늘, 그대로 오래 머무르고 싶은 순간, 그때도 자유로움이 스며든다. 산은 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을 선물해 준다.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통로가 하늘, 바위, 꽃처럼 산에는 참 많다. 산에서 만난 자유로움이 있기에 밀폐되고 궁색한 일상의 공간이 숨을 쉴 수 있는 것이다. 그 자유로움으로 가는 다가섬과 열림의 시간이 산행이다. 서술자는 친구들에게 다가섬과 열림의 그 시간을 선물해 주고 싶었을 것이다. 내려가는 길에서 만난 야생화들, 여유를 찾게 된 발걸음 등에서 최상의 인생길을 떠올린다. 산행길에서 만난 감성들에게 색깔과 의미와 느낌을 덧입혀 독자들과 만나고 있어, 감칠맛이 난다. 독자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고 사색의 의미 방울을 제공할 수 있는 수필을 만날 수 있어, 흐뭇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