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첨단산업과 전통문화의 조화가 필요하다 / 오수열 |
| 2022년 05월 01일(일) 19: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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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을 훌쩍 넘긴 지방자치제도가 점차 그 뿌리를 내려가면서 시장·도지사와 같은 광역단체장은 물론이고, 시장·군수(구청장)와 같은 지방행정 책임자들의 역할이 우리들 삶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깨달아 가고 있다.
예컨대 지난 1년 동안 우리 광주의 최대 현안이었던 학동 참사와 화정동 아파트 붕괴 사고의 경우에도, 제도와 정책을 제외하고는 건축의 인·허가 및 감독 등 실질적 권한은 거의가 지방자치단체의 소관 사항에 속한다. 우리가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방선거에도 보다 커다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지금은 유학(儒學)을 가르치는 향교(鄕校)에서 보내고 있지만, 40여년을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친 사람으로 선거를 앞두고서는 주요 후보자들의 경력과 공약을 들여다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리 광주를 이끌어갈 단체장과 의원 후보자들의 공약 어디에서도 광주를 ‘역사성’에 바탕한 인문학(人文學)의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문화·예술 도시로 만들겠다는 내용을 찾아 볼 수 없어 실망스럽다.
물론 일제(日帝) 침략 이후에 도시화 된 광주의 성격상 고색창연한 역사도시의 면모를 지니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의 역사성과 최소한 근대화 이후 서양문화의 유입을 상징하는 흔적을 드물지 않게 지니고 있는 곳이 광주이다. 문제는 이들이 다른 지역과는 달리 무관심 속에서 방치된 채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다는데 있다.
물론 모든 인적·물적 자원이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자동차와 AI 등 경제·산업 분야가 지역발전에서 우선순위의 앞에 놓이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하나의 도시가 발전되어 가는 과정에서 과거의 흔적들이 멸실되어 가고 오직 산업화에만 관심이 집중될 때, 그 결과가 어찌되는가는 많은 선진국가의 도시들에게서 그 사례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1990년 여름 필자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국무부의 관리들이 사찰코스로 강력히 추천한 곳은 산업화된 거대도시보다는 그들의 건국과정과 발전상을 느껴볼 수 있는 역사도시들이었다. 예컨대 서부지역에서는 LA나 라스베가스 보다는 샌프란시스코를, 동부지역에서는 버지니아의 월리암스버그를 보라는 것이었다. 한때 공업도시로 번성했던 버펄로가 환경문제 등으로 쇠락하면서 주민들이 떠나버린 후의 황량함을 필자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후 몇 년 뒤 다시 미국을 방문하여 남부지역의 많은 곳을 찾았지만 지금까지 나의 뇌리에 가장 깊이 남아있는 곳은 ‘키웨스트’에서의 ‘헤밍웨이 집’이다.
어디 그 뿐인가. 워싱턴, 뉴욕의 여러 곳을 다녔지만, 인상 깊었던 곳은 수십층의 마천루(摩天樓)가 아니라 ‘링컨 기념관’과 ‘자연사 박물관’ 등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아마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과연 광주를 찾은 외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줄 광주의 ‘볼거리’는 무엇일까? 깊이 고민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싶다.
아마도 ‘코로나 팬데믹’이 어느 정도 진정되면 거의 모든 국가에서 그동안 억눌러져 왔던 ‘관광욕구’가 다시 분출할 것이다. 아무리 첨단 산업이 발달한다고 하여도 사람을 끌어 모으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면에 있어서는 관광산업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한다.
얼마 전 광주유학대학이 주최한 학술세미나에 참석한 전주전통문화연수원의 김순석 원장에 따르면 코로나 펜데믹이 오기 전 ‘전주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이 연간 1천만 명을 상회하였고,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도 600만~700만 명을 유지하였다고 한다. 전주의 인구가 광주의 절반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거기에서 파생되는 경제적 효과와 도시 이미지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 일지는 가늠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 때문에 최근 필자는 성균관(成均館)과 전주향교(全州鄕校)를 다녀왔다. 서울의 성균관이야 논외로 치더라도 인근 전주가 역사와 전통문화 진흥에 쏟는 관심은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심 지역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전라감영’을 복원하고 있고, 다리 하나를 놓는데에도 역사적 스토리를 접목시키고 있는데에서 ‘지방도시 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우리도 더 늦기 전에 빛고을 광주를 첨단사업도 중요하지만 그에 더해 인문학에 바탕 한 문화와 예술이 공존하는 도시로 만드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 더이상 산업화라는 구호 속에서 역사성과 문화예술이 관심 밖으로 밀리는 ‘삭막한 도시’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이를 위해 지역발전정책에서도 균형감각을 지닌 지도자가 선출되기를 바라는 필자의 소망이 헛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