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군불 / 시 - 이겨울
2022년 05월 02일(월) 19:43
아랫목 이불속에 손을 넣어 보는 엄마
구둣돌이 식으면 추울까봐
늦잠 자는 딸에게 군불을 지펴주러 간다
불쏘시개 없다고 궁시렁 궁시렁
새벽어둠을 한참 휘젓는다

탁탁 치는 부지깽이 소리
장작불 타는 소리 들린다
봉창 틈으로 세어든 연기냄새
굴뚝위에서 내 유년이 춤을 추고
적막을 어루만진 연기는
쉬 집을 떠나지 못한다

사그라든 군불의 마지막 들 숨소리
엄마의 시름은 재가 되고
가슴앓이 붉은 재가 되어 눕고
검은 벽에서 굴러 나온 고구마의 노란 향수.

<이겨울 약력>
▲ 국회와 문화원 연합회 주최 국민의 시 대상
▲ 문화원 연합회 주최 효사랑 시 최고상
▲ 국제 펜 광주 올해의 작품상 광주시문학상
▲ 시집 : ‘허공을 마시다’, ‘섬 하나 베게삼고’

박덕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전남대 교수 역임
▲중앙일보 신춘문예당선
- 평 설(박덕은 문학평론가)-
이겨울 님의 시 ‘군불’에서의 시적 화자는 늦잠 자는 딸에게 군불 넣어 주려고 부엌으로 간 엄마를 관찰하고 있다. 구들돌이 식을까 봐 군불 지피는 엄마, 부지깽이 탁탁 치며 장작불을 지핀다. 구들돌은 제 몸을 뜨겁게 달궈 모든 온기를 아랫목에 몽땅 건네준다. 속 깊은 사랑 같은 그 구들돌이 식을까 봐 엄마는 군불을 지피기 위해 아궁이 앞에 앉는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에도 추위를 친친 감은 엄마는 아궁이의 불땀을 살펴보며 군불을 지폈을 것이다. 서러움과 막막함이 불길을 막지 않도록 부지깽이로 사그라드는 불씨를 끌어모아 다시 살렸을 것이다. 그처럼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지냈던, 유년의 추억이 굴뚝 위에서 춤춘다. 군불이 사그라들 때쯤 엄마의 시름은 재가 되고, 재 속에서 굴러 나온 고구마는 노란 향수에 젖게 한다. 이 시를 통해 내 안에서 타올랐던 무형의 군불을 들여다보게 된다. 누군가를 위해 지폈던 사랑의 군불이 여전히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따스했던 그 군불 같은 삶이 불현듯 그리워진다. 찬바람이 불어온들 서로가 서로에게 군불 지피는 손길이 있다면 춥지 않을 것이다. 이 시는 이미지 구현을 통해, 향수 속으로 빨려들게 하는 솜씨가 멋지다. 특히, 적막을 어루만진 연기가 쉬 집을 떠나지 못하고 망설이는 대목에서, 가슴 뭉클한 추억에 젖게 한다. 이미지가 살아 있을 때, 시에 대한 친숙함과 감동이 더 빨리 더 가까이 다가옴을 실감나게 하는 시라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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