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담쟁이를 보며 / 시 - 이재설
2022년 05월 16일(월) 19:42
평지에서 어지럼증을 느끼는 생명이 있다
절망을 기회로 만드는 특별한 비결이 있다
절벽은 높고 가파르고 넓을수록 축복이다
그곳은 평화의 땅 난공불낙의 마추픽추다
남을 밀어내기보다 자신을 혹독한 환경에
적응시키는 처절한 너의 인내는 눈부신 개척이다
밟히는 걸 참지 못하는 고고한 너의 품성이다
현기증에 떠는 바람의 공포를 짜릿하게 즐기며
전율하는 너의 감성은 허공을 지배하는 너의 경지다
구석구석 실가지 어느 한 줄기라도
소홀함이 없는 원활한 소통은 한 뿌리의 긍지다
덮어주고 감싸주고 시멘트벽에도 숨길을 불어넣어
푸른 생명으로 한 몸이 되는 너는 부활이다
밤이면 유난히 반짝여주는 별무리
알 수 없는 기억을 따라 오르는 너의 좌표는
이미 은하에 닿아 있다.

<이재설 약력>
▲ ‘순수문학’, ‘문학춘추’ 등단
▲ ‘시와 사람’ 3회 추천 완료, ‘시와 세계’가 선정한 새로운 시 2회 등재
▲ 한국문인협회, 광주문인협회, 광주시인협회 회원
▲ 저서 : ‘시의 벽에 기댄 나의 독백’


박덕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전남대 교수 역임
▲중앙일보 신춘문예당선
- 평 설(박덕은 문학평론가) -
시적 대상을 새롭게 호명하며 영혼을 부여하는 일, 그 살아 있는 시 쓰기를 하기 위해 시인은 밤잠을 설치는지도 모른다. 내일도 모레도 읽히는 시를 쓰기 위해 시인은 관점을 새롭게 정비하고 새로운 해석을 정립한다. 그 지난한 노력이 이 시에서 느껴진다. 이재설 님의 시 ‘담쟁이를 보며’에서의 시적 화자는 담쟁이를 인격체로 대우하며, 예찬의 시를 쓰고 있다. 절망을 기회로 만들고, 높고 가파른 절벽일수록 축복으로 여기고, 평화의 난공불락이며, 눈부신 개척이고, 고고한 품성이며, 바람의 공포를 즐길 줄 알고, 허공을 지배하는 경지에 다다른 담쟁이. 실가지 하나라도 소홀함이 없고, 원활한 소통, 푸른 생명 불어넣은 부활인 담쟁이를 예찬한다. ‘현기증에 떠는 바람의 공포를 짜릿하게 즐기며/ 전율하는 너의 감성은 허공을 지배하는 너의 경지다’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절망과 좌절을 이겨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허공을 지배한다. 막막한 허공, 야금야금 집어삼키는 바람이 머무는 허공을 지배하는 담쟁이. 배짱 한 번 두둑하다. 풍파와 같은 바람의 공포를 즐긴다는 그 세상사에 대한 이해가 이렇게 담백하다니,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문득 담쟁이의 유전자를 물려받고 싶다. 코로나로 지친 현대인들이 담쟁이의 유전자를 물려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적 화자는 우리가 부러워하는 그 당당한 담쟁이에 머물러 있지 않고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미 담쟁이의 좌표는 은하에 닿아 있다고 말한다. 정말 멋진 담쟁이다. 낯설게 하기를 통해, 담쟁이를 새롭게 해석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담쟁이가 인격체를 넘어, 인간의 의지와 방향보다 한 발 더 앞서가고 있는 듯하다. 의인화하여 존재하는 담쟁이가 멀리 내다보며, 뒤따라오는 인간에게 따끔한 한마디를 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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