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56)

백년의 계획 모두가 이렇게 아득하기만 하구나

2022년 05월 24일(화) 19:21
나이가 들어가면서 발자취의 흔적을 남겨보려고 한다. 글을 써서 문집으로 엮어 보려고도 했고, 커다란 저택을 지어 자손들에게 남겨주려고도 했다. 그렇지만 암만해도 옥저(玉箸)를 다듬어 친지나 후진들에게 남겨주는 것은 많은 보람이 됐음이 선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보다 훤해진다. 후진 문집의 서문이나 발문으로 남긴 자국이 커 보인다. 오기는 어느 곳으로부터 왔다가, 떠나가기는 어느 곳으로 향해 가는 것인가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題冲庵詩卷(제충암시권) / 하서 김인후
오기는 어느 곳에 가기는 어디 향해
가고 오는 정해진 길 발자취 없으니
백년의 계획 이런가 아득하기 끝없네.
來從何處來 去向何處去
내종하처래 거향하처거
去來無定蹤 悠悠百年計
거래무정종 유유백년계

백년의 계획 모두가 이렇게 아득하기만 하구나(題冲庵詩卷)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다. 시문에도 능해 당대의 유명한 면앙정 송순과 교유했으며 무려 10여권의 시문집을 남겼던 인물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사람이) 오기는 어느 곳으로부터 왔다가 / 가기는 어느 곳으로 향해 가는 것인가 // 가고 오는 길에는 정해진 발자취가 없다고 하니 / 백년의 계획 모두가 이렇게 아득하기만 하구나’라는 한 덩어리 시상이다.

위 시제는 ‘충암 김정의 시집에 쓰다’로 번역된다. 시적 상관자인 충암 김정에 대한 평가의 요지는 ‘당쟁에 쓰러진 당당한 장부의 뜻’이라 했으니 조광조의 더불어 1519년 기묘사화에 연루됐다. 충암 김정(金淨: 1486-1521)을 두고 시인은 다음 시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주는 원래부터 그 유래가 심원하고(宇宙由來元) / 인생은 원래 떠다니는 것이라(人生本自浮) // 조각배 한 척에 몸을 싣고 가면서(扁舟從此去) // 고개를 돌려보니 아득하기만 하구나(回首政悠悠)’에서 시상을 얻어 제(題)했을 것으로 보인다.

시인은 인생무상의 또 한 편의 콩트적인 드라마를 쓰려는 태도를 보인 시상이다. 우리 인생이 오기는 어느 곳으로부터 왔었고, 가기는 어느 곳을 향해 가는 것인가라고 했다. 인생이 살다가 돌아가는 목적지를 엄히 묻는다. 철학적 인생관이다.

화자는 인생이 오가가는 발자취를 찾을 수 없음이란 허무라는 한 마디를 끌어안는다. 가고 오는 길에는 정해진 발자취가 없으니, 인생 백년이란 계획이 아득하기만 하다고 했다. 냉정한 인생 역경이란 엄중한 물음에 대답의 길은 다소 막연해진다.

※한자와 어구

來: (~부터) 오다. 從何處: 어느 곳으로 부터. 去: (~로) 가다. 向何處: 어느 곳으로 향하여. // 去來: 가고 오다. 앞의 오는 일과 가는 일을 아우름), 無定蹤: 일정한 자취가 없다. 悠悠: 근심스럽다는 뜻을 담고 있음. 百年計: 한 평생을 도모하는 일, 일생을 사는 일.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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