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지역연구로 보살핌의 경제를 이루다! / 김춘식
2022년 05월 30일(월) 19:41
김춘식 동신대학교 에너지경영학과 교수
생태주의자이자 환경운동가, 그리고 전 세계 지역운동의 선구자로 잘 알려진 스웨덴의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Helena Norberg-Hodge)는 서적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우다>에서 “우리는 전통 사회로부터 자립과 자존감, 검소함, 조화와 지속성, 내면적인 풍요로움 등을 배워야 하며, 이미 지나간 오래된 것에서 우리의 미래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행복의 경제학’에서 경제적 지역화를 이뤄 궁극적으로 선한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세계화라는 정치적 함의와 세계화를 주도하는 대기업의 횡포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히말라야 고원, 인도의 라다크(Ladakh) 사막지대에 사는 라다크인들은 생존을 위해 강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인종의 혼합에 대한 포용력이 강한 사회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70%의 티벳족 이외 다양한 종족들로 구성된 지역에 공존하면서 다름을 포용으로 승화해 내고 있었다. 아울러 라다크인들은 자연과의 공존을 가장 우선시했으며, 탐욕과 오만을 삶의 가장 큰 불행으로 여겼다. 그들에게 삶의 기쁨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보편적 예의를 지키는 ‘공존의식’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평화로운 공동체에 세계화라는 외부 세계의 바람이 불었다. 1990년대 라다크에 글로벌 자본이 들어와 히말라야 트래킹 코스와 관광자원이 개발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곧 돈은 라다크인들에게 중요한 가치로 자리한 동시에 자본은 불평등을 조장했으며, 이내 그들은 스스로를 가난하고 불행하다고 여겼다. 결국 라다크 지역의 행복은 서구 산업자본과의 접촉으로 인해 붕괴되고 말았다. 20여년 동안 라다크에 살면서 이 모든 과정을 직접 경험한 호지여사는 ‘개발’과 ‘진보’의 이름으로 강요되는 서구의 자본과 산업문화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그리고 세계화에 대항한 ‘지역화(localization)’, 그리고 지역의 전통가치와 문화의 회복을 위해 착취와 경쟁이 아닌 지역민들이 서로를 의지하는 ‘보살핌의 경제’를 대안으로 제안했다.

그런데 최근 호지여사가 강조한 이 지역화에 대한 의미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특히 지방자치를 표방하면서도 중앙집중화의 심화와 지방소멸의 위기에 처한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 그리고 지역학(地域學) 연구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중앙정부에 의존성이 큰 한국의 정치경제적 지형에서 라다크로 상징되는 지역공동체는 당면한 전 지구전 기후위기를 넘어 경제적 지역화 및 지역연구를 위한 중요한 거울이다. 또한 현재 한국에서는 중심부의 자본과 산업에 흡입력으로 지역경제는 붕괴일로에 놓여 있으며, 지역의 전통문화와 특색 산업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때문에 지역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로 지역의 정체성을 지켜내고, 지역에 당면한 보살핌의 경제를 구축하는 것은 필수 불가결하다. 이러한 필요에서 시작된 지역연구는 또한 세계화와 밀접한 연관 속에 시작됐다.

20세기 말에 시작된 세계화 시기에 각국의 중앙정부는 라다크의 사례처럼 지역이 직면하고 있던 가치와 문제들을 방어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역들은 각자도생의 길을 걸어야만 했었다. 각각의 지역들은 지구적 차원의 학습과 교류를 통해 경쟁력을 키우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다양한 정책들을 개별적으로 구상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자 지역에 대한 의미는 강화되고, 지역연구에 대한 필요성도 자연스럽게 제기됐다.

특히 한국에서는 1980년대 후반에 ‘지역’이나 ‘지방’에 대한 관심이 시작됐으며, 1990년대 중반에 본격 도입된 지방 자치 제도는 특정 지역의 구성원에게 정체성(identity)과 같은 지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지역민들에게는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나 지역의 한 개성 혹은 특수성을 발굴함으로써 새로운 미래가치 창출에 대한 소명의식도 갖게 했다. 결국 1993년 본격적으로 서울학연구소의 설립을 시작으로 2000년대 초반 이래 각 시·도에 다수의 지역학연구소나 지역학연구센터가 설립됐다. 최근에는 안동학, 청주학, 전주학, 안산학, 양주학, 광주학, 도봉학, 나주학, 영광학, 익산학 등 기초단위의 자치단체로도 지역학 연구가 확산되고 있으며, 향후 수년 이내에는 한국 내 거의 대부분의 지자체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돼 고무적이다.

지역연구의 필요성과 시의성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지역연구가 지역의 정신, 역사문화와 정체성 등 지역에 대한 인문적 이해를 통해 공동체적 가치를 발굴하고, 지역의 생태자연과 문화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지역(도시) 모델을 제안하며, 지역민들 서로가 의지하는 보살핌의 경제를 형성하고, 외지인들과의 공존과 상생을 주요한 목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지역에 대한 이해와 연구는 세계를 창조적으로 구성하고, 오래된 미래를 확인하는 중요한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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