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경 개인전 ‘우서일절(偶書一絶), 너에게로 가는 길’ 28일까지 광주롯데갤러리 낯선 일상에서 조우한 고향의 그리움 5년간 미국생활 중 작업한 연작 시리즈 선봬 시간 흐름 따른 색 변화·작품세계 변모 ‘눈길’ 최명진 기자

2022년 06월 12일(일) 18:58

오수경 작가가 작품 ‘사과나무’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우서일절(偶書一絶). 우연히 지은 시 한 구절. 고려시대 승려이자 시인인 충지(沖止)가 자연과 풍광을 소재로 쓴 한시다.

타국에서 우연히 만난 자연 풍경을 통해 고향을 그리워하고 이를 자신만의 작품 세계로 펼쳐 보이는 전시가 마련됐다.

광주롯데갤러리에서 오는 28일까지 열리는 오수경 작가 초대전 ‘우서일절, 너에게로 가는 길’이다.

많은 예술가에게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에 대한 고민은 영원한 숙제와 같다.

한국 최초 인상주의 화가이자 민족주의자인 오지호 화백의 손녀이자, 오방정색의 작가 오승윤 화백의 장녀인 그녀에게도 이같은 고민은 마찬가지일 터.

자신에게 영향을 준 그들의 작품을 어떻게 닮아야 하는지 또는 닮지 말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작업을 이어가는 그녀는 특유의 성실함과 호기심으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일궈가고 있다.

이번 전시작들은 총 33점으로 지난 5년 간 작가가 미국 텍사스에 머물며 만난 하늘과 바다, 정물 등 연작이 주를 이룬다.

“제가 있던 텍사스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산이 없는 지형이라 하늘이 그렇게 맑아 보일 수 없더라고요. 그러다보니 하늘이라는 배경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됐죠. 지속되는 코로나 상황과 타국에서의 생활에 외로운 감정을 많이 느꼈어요. 우울함을 달래려 산책을 많이 했는데 그때 봤던 풍경들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관상용 사과나무, 비파나무, 수련 등 산책하며 본 모든 것들이 곧 그의 작품 소재다.

그의 그림에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하늘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형형색색의 하늘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다가 라인을 따라 선묘로 노을을 나타내봤어요. 푸른색, 노란색, 보라색 등 다양한 시간대의 하늘빛을 여러 번 겹칠해 캔버스를 채워나갔습니다.”

작품 ‘사과나무’ 등 그의 최근작들은 많은 것을 담아내려는 것에서 탈피해 하나에 온전히 집중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의 바다 시리즈 또한 마찬가지다.

“초기작인 ‘바다’에선 물고기 갯수도 많고 알록달록 많은 것을 채워내려고 했던 반면에 가장 최근 그린 ‘열대어’에선 수초 사이에 헤엄치고 있는 한 마리 물고기에 집중했어요. 그런 식으로 ‘사과나무’와 맥락을 같이 해서 조금 덜어내보자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습니다.”

전시장 한켠에는 그가 미국에 가기 전 그렸던 작품인 ‘수국’과 ‘범부채’가 나란히 걸려있다. 특히, ‘범부채’는 작가가 마지막으로 아버지 오승윤 화백과 이야기하면서 작업해온 상징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전시 부제인 ‘너에게로 가는 길’은 이처럼 오 작가가 화가로서의 자신의 세계를 만드는 길을 의미하기도 하며, 그리운 고향집이자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하기도 한다.

작가가 타향에서의 산책길에 만난 일상적 소재들은 곧 고향집에서의 추억과도 연결되는 대목이다.

“우연히 지어진 한 수의 시처럼 제 작품들도 그런 의미를 갖는 것 같아요. 거창한 계획이나 논리 없이 만들어진 우연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하게 곳곳이 칠해지지 않아도 그것이 결점이 아니라 화두가 된다는 점 또한 그런 것 같아요. 제 그림을 보는 분들이 편한 마음으로 위로와 치유를 받고 가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