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비워내고 얻은 즐거움 / 수필 남은례
2022년 06월 13일(월) 22:33
전대미문의 감염병이 일상을 뒤집어 놓더니 사람 간의 거리두기로 사람살이 판도가 달라지고 있다. 이웃 간의 발길도 멈추더니 하늘길도 멎었다. 경제는 멈춘 것도 모자라 뒷걸음치고, 언제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여행도, 모임도 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갇혀 행동반경이 좁아지니 속까지 답답해 소화가 안 되는 것 같다. 늘 부실한 위장이 탈이 난 걸까? 며칠째 머릿속도 가슴속도 거북하다.

수년간 몸담은 집이 언제부터인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발 디딜 공간이 점점 줄어든 것 같더니 아예 숨 쉴 공간조차 없어 보였다. 방은 방대로 거실은 거실대로 베란다마저 짐으로 가득 찼다. 나는 이미 이 집 주인의 자리를 잃은 듯하다. 과식한 내 속처럼 책장, 옷장, 부엌 등 집안 곳곳이 호흡곤란을 일으키고 있다. 웬만한 처방으론 되지도 않을 것 같다. 물건 몇 개 정리한다고 만성 소화 불량이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처방은 두 가지,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든지, 눈 딱 감고 물건을 버리는 일이다. 아파트에 열 평쯤 보탠다면 좋을 것 같았다.

‘남은 인생 좀 여유롭게 살아볼까?’

명절 때 삼 남매 자식들과 아이들까지 모이면 좀 더 넓으면 좋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궁리를 해본다. 아서라 이젠 힘이 부쳐 청소도 하기 싫고 베란다 화분 관리도 싫어서 차츰 빈 화분이 늘어 가는데. 이 나이가 되어보니 무슨 일이든 저지르거나 부딪히는 일은 겁부터 난다. 다시 되짚어 생각해 보는 수밖에 없다. 출가한 자녀들이 오는 것도 한 해 몇 번뿐인데 분수에 맞지 않게 집을 넓히는 것은 내겐 사치다.

남은 방법은 하나, 버리는 것이다. 책장부터 책들을 덜어내야 했다. 언젠가는 읽겠지 빼곡히 꽂아 넣은 책들. 그러나 먼지만 입은 채 손길이 닿지 않은 지루한 시간 속에 잠들어 있었다. 시간이 갈피갈피 쏟아지는 수십 권의 책과 책장을 들어냈다. 삼 남매가 자랄 때 받아두었던 상패, 기념패, 패넌트까지 정리하고 나니 서재는 웅크렸던 숨을 시원스레 내쉬는 것 같다.

가끔 문인들이 보내주는 문집이나 소설책은 상자에 담아 놓았다. 아파트 관리실 이 층 독서실에 연락했더니 새 책이라고 좋아하며 가져갔다. 빛바래고 먼지에 절은 책은 끈으로 묶어서 폐지로 내보냈다.

옷장에 유행을 넘긴 나처럼 늙은 옷이 그리 많을 줄이야. 철이 바뀔 때마다 하나씩 사놓은 옷들은 철 지나면 새 옷에 밀려 구석으로 들어간다. 이제는 만사 귀찮아 애경사에도 무조건 편한 옷만 입고 가게 된다. 자주 입지 않은 옷장의 터줏대감 격인 코트나 셔츠, 정장 옷은 찬밥신세가 되었다. 제일 아까운 건 한복이다. 삼 남매 혼인식 때마다 새로 장만해서 장롱 위에 세 벌이나 상자 안에 담겨있다. 색깔이 고와서 옛날 같으면 아이들 운동회 때라도 사용할 수 있겠지만. 소재도 면이 아니라 걸레로도 사용할 수 없다. 시집간 딸들의 옷까지 다 꺼내놓으니 거실은 순식간 산더미가 되었다. 왜 의식주라 일컬으며 옷을 앞세웠는지 알 것 같았다.

부엌의 그릇도 만만치 않다. 그릇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이 있다. 쓰기 불편하지만 선물로 받아서 담아 놓아 정이 깃든 것, 아주 오래전 글을 써서 상품으로 받은 커피 세트나 그릇들은 소중한 나만의 추억으로 간직하기도 했다. 안쪽에 모셔두고 쓰지 않은 그릇은 그만큼 아낀 까닭이다. 찬장이 문으로 닫혀 어디에 어떤 그릇이 있는지 모르니 쓰지 않게 되어 공기만 담고 있었다. 보이지 않으면 멀어지는 것이 사람만의 일은 아닌 듯하다.

만성 불량의 주범은 베란다에도 가득하다. 아이들은 한사코 사 먹자고 담그지 말라는 간장 된장 그릇, 각종 젓갈 그릇이 냄새까지 쿰쿰하게 풍기며 가득하다.

안방 쪽 베란다는 장독대가 가득 자리 잡았다. 장아찌 담글 용도의 누름돌도 몇 개 뒹굴고, 서울 아들네로 물건 보낼 아이스박스도 씻어서 차곡차곡 쌓여있다. 저장 식재료도 거풍을 위해, 마늘, 고사리, 취, 토란 나물 주머니가 주렁주렁 걸려있다. 젊은이들 눈에는 거슬리게 보이는지 제발 그러지 말라고 하지만, 내 눈에는 누렇게 바랜 색깔조차도 정감으로 다가와 맘이 넉넉해지는 풍경이다. 거실에 티브이 받침장이 오래되어서 문 장석들이 덜컹거린다. 아이들은 버리고 새 가구로 바꿔준다고 하지만, 한지로 바른 문살무늬의 작은 문짝 8개는 옛사랑방의 문살 같아 정겹다. 금방이라도 할아버지의 곰방대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내게는 추억을 반추하는 물건이다. 모든 물건은 제자리에 있어야 빛이 난다. 젊은이가 사는 공간에는 신문물의 인테리어가 좋듯이, 연령대가 있는 공간에는 상주하는 사람의 취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백은 숨을 쉴 수 있는 틈이기도 하다. 물건도 가득 차 있으면 답답하게 느껴지고 사람도 완벽하면 부담스럽다. 약간 허술해도 친근감이 묻어나는 사람에게 정이 더 가는 듯하다. 집이 비좁다고 답답했던 것은 내가 아니라 콘크리트 벽에 빽빽이 갇혀있던 그것들이었다.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었을 때 탈이 나는 것처럼 소화할 수 없는 것으로 욕심껏 채운 나로 인해 답답하게 갇혀있던 것들이다.

정리는 나를 돌보는 일이다. 이제는 바라보는 일보다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집안을 둘러보니 열 평쯤 넓어진 듯, 곳곳에 드러난 여백이 여유롭다. 가지고 채워서 행복하기도 하지만, 버려서 행복한 경우다. 나도 이제 버려서 얻은 열 평, 채워서 느끼는 즐거움이 아니라 비워서 즐거움을 얻었다. 여백의 공간에 이른 아침 햇살이 제일 먼저 찾아와 창가에 앉았다. 이제 내 속만 조금씩 비우면 될 것 같다.

<남은례 약력>
▲ 창작수필 등단, 교육부 교육수기공모 대상
▲ 광주 시민백일장 수필 장원, 검찰청 사랑의편지공모 대상
▲ 광주문협이사, 여류수필회장 역임

-평 설-
남은례 님의 수필 ‘비워내고 얻은 즐거움’에서의 서술자는 비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비움은 다이어트와 같은 말이다. 식욕의 다이어트, 탐욕의 다이어트, 허세의 다이어트 등 불필요한 것들을 비워야 몸과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다. 서술자는 ‘과식한 내 속처럼 책장, 옷장, 부엌 등’을 언급하며 다이어트를 하고 싶어 한다. 과식한 내 속처럼이라는 표현이 비움이라는 주제와 절묘하게 잘 맞아 떨어진다. 다음에 이어진 ‘물건 몇 개 정리한다고 만성 소화 불량이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라는 표현과 연결되면서 주제에 대한 이해를 높여 주고 있다. 수필은 이렇듯 눈에 띄는 묘사가 있으면 좋다. 묘사라는 미적 가치의 그릇에 담을 줄 알아야 한다. 서술자는 큰맘 먹고 집안을 비우기 시작한다. 읽지 않고 꽂아두었던 책들을 정리한다. 아쉬움 많은 문명의 살들을 비운다. 언젠가는 읽겠지라는 가능성만 열어둔 책의 살들을 빼기 시작한다. 불필요한 지식의 살들을 빼서일까, 빈 책장을 바라보는 서술자의 마음이 가벼워졌을 것이다. 이번에는 옷의 식욕을 비운다. 옷의 탐욕스런 식욕을 비우지 못하면 서술자는 옷의 배를 불려 주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을 깨달았을까. 서술자는 유행이 지난 옷들, 새 옷에 밀려난 옷들을 정리한다. 베란다와 부엌의 그릇도 버릴 건 버린다. 식욕으로 날름거리는 그릇의 혀들이 하나씩 밀려난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여백이 생긴다. 이제 남은 건 하나, 서술자의 마음을 비우는 일. 감정의 다이어트, 생각의 다이어트 또한 이뤄질 것 같아 흐뭇하다. 이 수필은 서술자의 체험담에 기초하여 진솔하고 진지하게 끌어가는 문장력에 힘이 실려 있어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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