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키우는 사람 / 천세진
2022년 06월 19일(일) 19:30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설립 초기에 콘텐츠를 채워야한다는 광주사회의 요구가 많았다. 당연한 요구였지만, 성장이 조금 늦더라도 그 콘텐츠를 누가 주도하여 어떻게 채우는가를 먼저 고민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에는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완성형 콘텐츠를 전시회 형식으로 지속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당장에는 효과를 볼 수 있지만 그런 형식이 반복되면 자생적으로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과 자원이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의 자원은 예산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지난 5월 어느 저녁, 서울에서 활동하는 시인들과 전주의 시인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공식적인 자리는 아니었고,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젊은 시인들이 전주에 내려와 10개월째 살고 계시는 김사인 시인을 만나러 왔다가 만들어진 자리였다.

김사인 시인이 전주에 계신 동안 작은 변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전주와 완주군의 도서관에서 시詩 관련 특강이 이어졌고, 그것을 계기로 전주와 완주의 시인들 사이에서도 의미 있는 문학 교류가 이루어졌다. 당장은 작은 변화지만 괄목할만한 문화적 조류의 단초가 얼마든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지자체들이 한국 문단의 걸출한 작가를 초청하는 일은 더는 특별하지 않지만, 김사인 시인 초청뿐만 아니라 전주시와 완주군의 여러 문화 기획 사업의 배경에는 한 사람의 각고가 깃들어 있다. 작년에 전북대에서 정년을 맞은 이종민 교수가 주인공이다.

이종민 교수는 완주인문학당,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천년전주사랑모임, 호남사회연구회 등을 이끌고 있고, 전주전통문화도시조성위원장을 맡아 오늘의 한옥마을이 있게 했고, 전주와 완주, 호남에 뿌리를 둔 문화 프로그램들을 기획하시느라 늘 바쁜 분이다. 이력을 열거하며 소개한 이유는 어느 한 사람을 조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한 도시에 뿌리를 두고 살아가는 이들 중에서 그 도시의 문화를 높은 수준으로 이끌어가는 문화 기획자들이 다수 탄생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누군가를 모셔오는 것은 무조건 배우기 위함이 아니다. 초청된 이가 갖고 있는 문화적 역량에 귀를 기울여, 초청한 도시의 문화적 역량이 어느 지점에서 보완이 필요하고, 어느 지점을 더 빛나게 해야 하는지를 조언 받는 것이 바른 함의일 것이다.

모셔온 이에게 초청 도시가 가진 것을 자랑하고 홍보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이미 우리에게 멋진 문화가 있다’는 자부심은 얼마든지 이해된다. 모든 공간은 문화 공장이므로 그대로 놓아두어도 문화는 생겨난다. 다만 이때의 문화는 창의적인 것이 아니라 관습적인 성격이 강한 문화일 수 있다. 관습적, 인습적 풍토에 방점을 찍으면 창조적인 고급문화가 생겨나기 어렵다.

서울을 따르자는 것도 아니다. 지방도시는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다. 지방도시는 자신의 독자성과 역사성에 더 주목해야 한다. 좀 뜬금없지만, 자연계의 현상을 지켜보며 스티븐 마이어라는 학자가 한 말을 인용하겠다. “삶은 그냥 달라질 것이다. 훨씬 덜 다양하고, 덜 매혹적이고, 훨씬 더 예측 가능하게 될 것이다.”인간의 개입이 자연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말한 것이지만, 문화적 생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서울의 문화가 더 화려하겠지만, 거기에 눈을 돌리고 빠져드는 순간 자신의 매력과 가능성을 잃고 만다.

그래서 지역의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려는 이종민 교수 같은 분의 존재가 그토록 중요하다. 자기 공간의 문화적 탄생 배경과 역사를 대변하고, 현재적 상황을 해석하고, 미래의 변화를 기획해주어야만 공간의 주민들이 문화적 풍요를 누릴 수 있다. 그 일은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인재를 키우지 않고 하드웨어(건축물) 구축에만 관심을 쏟으면, 그 지자체의 문화 공간은 전시 공간 이상의 정체성을 갖기 어렵다. 중앙에서 만들어진 문화콘텐츠를 소비하는 협애한 공간으로 역할이 묶이게 되고, 창조적 생산 공간으로 성장하기 어려워진다.

문화는 언제나 그 토대에 사람이 있다. 앙코르 와트는 위대했으나 그 후손들은 앙코르 와트 아래에서 코코넛과 기념품을 팔고 있다. 그 모습이 위대한 문화를 일군 선조의 능력이 유전되어 화려하게 꽃피운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자신들만의 문화를 성장시킬 사람을 왜 길러야 하는지를 깊이 새겼으면 한다.
이 기사는 광주매일신문 홈페이지(www.kjdaily.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kjdaily.com/1655634637577227028
프린트 시간 : 2023년 12월 09일 08:4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