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기의 ‘낙화’가 주는 울림 / 김선기
2022년 06월 27일(월) 19:39
김선기 문학박사·문학평론가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중략) …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이형기의 시 ‘낙화’ 일부다. 이 시는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순환을 인간의 사랑과 이별이라는 삶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시적 화자는 꽃이 지는 모습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사랑이 끝났을 때 미련 없이 떠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여기서 꽃이 진다는 것은 상실이나 허무가 아니라, 더 큰 성숙이나 만남을 위한 과정을 의미한다. 꽃이 져야만 열매를 맺는 것처럼 사람도 이별을 겪고 나서 정신적으로 더 성숙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라는 역설적 표현을 통해 압축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형기의 ‘낙화’는 읽을 때마다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우리 시문학사에서 절창 몇 편을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낙화’를 선택할 것이다. 시는 결코 손끝 재주에 의한 언어유희가 아니다. 시의 궁극적인 세계는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엄숙한 삶이냐, 어떻게 사는 게 가장 가치 있는 삶이냐의 문제로 집약된다. 즉 시는 인생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것을 더욱 추구해서 진리와 진실을 밝혀줌으로써 생의 감동과 감화를 전하는 기표다. 이 모든 시적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게 바로 이형기의‘낙화’다.

요즘 ‘낙화’를 다시 읽으면서 시적 배경이 된 꽃의 형상에 대해 자못 궁금해졌다. 글쎄, 이 시와 가장 잘 어울리는 꽃은 무슨 꽃일까. 아마, 가장 아름다울 때 속절없이 떨어지는 처연한 꽃, 동백이 아닐까. ‘그대만을 사랑해’라는 꽃말을 지닌 동백꽃은 겨울바람을 안고 피어나 가장 화려할 때 눈물처럼 뚝뚝 떨어진다. 또 무슨 꽃이 있을까. 그래, 벚꽃도 있겠다. 봄바람을 안고 꽃을 피우는 벚나무는 꽃을 머리에 이고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 우리네 삶에도 그런 아름다운 찰나가 있다. 그 타이밍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이는 자기 자신일 터이다.

이형기의 ‘낙화’를 인문학적 상상력에 기대면 시의 확장성은 대단히 크다. 옛 성현들이 가르친 삶의 지혜와 닿아있기 때문이다. 성현들은 ‘해가 저물 때까지 기다리지 마라’고 힘주어 말했다. 때가 되면 미련을 버리고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이란 것이다. 해는 저물 때가 다가오면 밤의 장막 뒤로 자신을 숨기고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이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명징한 진리다.

그리고 지혜로운 기수는 경주마를 은퇴시킬 때를 안다. 경주 중에 쓰러져 모두의 비웃음을 사는 것보다는 정상의 자리에 있는 늠름한 모습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기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적당한 때에 물러설 줄 아는 사람만이 아는 지혜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진다. 이걸 흔히 인연이라고 한다. 그만큼 인간관계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사람은 처음 만날 때 보다 떠나간 사람을 생각할 때가 더욱 행복하다. 떠난 사람과 나눴던 아름다운 시간이 그리움으로 쌓인 까닭이겠다.

누군가의 가슴에 아름답게 기억된다는 것, 그처럼 행복한 삶은 없을 것이다. 문득, 공연을 마치고 관객의 갈채를 받으며 떠난 ‘평산 노인’이 생각난다. 어쩌면 이형기의 시‘낙화’와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그가 그리운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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