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매일신문 창사 31주년 특집]문병란시인기념사업회장 리명한 소설가가 말하는 문학과 시대정신 “민족분단 아픔 딛고 시대정신 담아내는 문학활동해야” 최명진 기자 |
| 2022년 06월 27일(월) 19: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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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문학계 원로이자 광주·전남작가회의 고문인 리명한(90) 소설가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리명한 소설가는 식민지기 독립운동가이자 문학청년이었던 이창신의 장남으로 1932년 나주에서 출생했다. 조선대를 거쳐 산하 고등학교에서 10년 동안 국어를 가르친 그는 70년대를 전후해 ‘소설문학’ 동인으로 활동했다.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단편 ‘월혼가’ 당선으로 문단에 등단했으며, 전남일보에 장편 ‘산화’가 당선됐다. 대표작으로 ‘효녀무’, ‘황톳빛 추억’, ‘달뜨면 가오리다’ 등이 있으며 광주매일신문에 ‘춘추전국시대’ 등을 연재하기도 했다. 아울러 그는 1970년대 초기 한국문인협회에 참여했다가 1987년 9월 광주·전남작가회의를 결성해 문병란, 송기숙과 더불어 공동의장을 맡기도 했다.
현재 나주독립기념관장으로 재직 중인 그는 지난해 12월 발족한 문병란시인기념사업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문병란시인기념사업회는 문학적 통일운동과 더불어 반독재 민주화를 위한 민족운동을 펼친 문병란 시인의 작품을 소개하고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설립됐다.
기념사업회의 첫 번째 발걸음은 일제강점기 저항시인 주요시편 모음집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 조선시인 독립과 저항의 노래’ 발간이었다.
해당 시집은 문병란 시인이 평가한 조선의 저항 시인들의 주요 작품을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가 편역해 지난해 9월 일본에서 출간됐다.
투철한 시대정신으로 올곧은 삶을 추구한 시인들의 활동과 문학적 성과를 되돌아보기 위해 펴낸 책으로 윤동주, 이육사, 한용운, 이상화, 심훈, 조명희 6명 시인의 주요 작품이 10편씩 게재돼 있다.
지금으로부터 1백여 년 전 제국주의 침략과 약탈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던 19세기 초, 침략국의 대열 맨 마지막으로 합류한 일본은 오랜 이웃인 조선반도로 건너와 우리의 정치·경제·교육 등 모든 권리를 빼앗았다.
나라를 잃은 민족의 뜻 있는 인사들은 중국으로 건너가 임시정부를 세워 국권을 회복했고, 동북지방을 중심으로 대규모의 무장세력을 조직해 침략군을 몰아내는 작전을 전개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1919년 3월, 분노한 전 민족이 궐기한 독립운동이 폭발했고, 1926년에는 6·10만세사건이 벌어졌다.
1929년 10월 나주에서 한일 학생들 간 충돌로 발단된 사건은 광주에서도 폭발해 전국적으로 확대됐으며 이는 국경을 넘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식민지배가 지속됐던 35년 동안 일본 침략자들은 두 민족의 동화정책을 실행하느라 한글과 민족어인 조선말까지 말살하려는 갖가지 술책을 부렸다.
민족적 분노가 타오르는 가운데 우리 시인들은 가혹한 족쇄인 치안유지법과 출판관계법 등에 굴하지 않고 양지가 아닌 그늘에서 붓을 들었고 영혼이 빛나는 문학을 창작해냈다.
앞서 소개된 이 6명 조선 저항 시인들의 작품 또한 이에 부합하는 독립운동 정신을 지녔다는 점에서 번역서 출간 당시 일본 원로학자에 의해 자국 서평 전문지에 소개되는 등 큰 관심을 끌었다.
지난 5월14일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에서 열린 한일국제심포지엄 ‘조선 저항시인과 탈식민주의’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어진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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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과 문병란시인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이번 심포지엄은 식민지기의 저항시인들을 조명하는 데서 나아가 나주 출신 민족 저항 시인을 조명하기 위한 장으로 마련됐다.
리명한 소설가는 이번 심포지엄에 대해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있어 시인들이 어떻게 활동했는지 돌아볼 수 있는 자리였다”며 “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 조직과 함께 민족주의 시인들의 작품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 역사학자 신채호 선생, 그리고 조선 식민지기 아나키즘 독립운동 등에 대해서도 다뤘다”고 설명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와타나베 스미코 다이토분카대 명예교수와 역사학자인 가메다 히로시, 김주현 경북대 교수와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 등 일본과 국내 학자들간의 교류의 장으로 구성됐다.
식민지시대 조선에서의 국민문학과 더불어 무정부주의를 의미하는 아나키즘, 그리고 이를 실현했던 역사학자 신채호의 혁명문예론 등에 대한 연구발표가 이어졌다.
아울러 이에 대한 담론으로 일제강점기 민족해방 정신을 추구했던 나주의 대표 문인 이석성 시인과 정우채 시인을 조명하는 시간 또한 마련됐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주역인 정우채 시인의 ‘단결하자’를 비롯한 저항시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으며, 이석성(본명 이창신)의 1932년 발굴시 ‘우리들의 선구자 말라테스타를 애도한다’에 대한 논문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또한 이날 자리에는 문병란시인기념사업회 고문인 민영돈 조선대 총장과 박맹수 원광대 총장도 함께 해 더욱 뜻 깊은 행사가 됐다.
리 소설가는 “이번 심포지엄은 1930년대 한국 문학사에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식민지기 나주지역 저항시인들을 전국에 알리고 이들의 작품이 갖는 의의를 공유, 확산하는 데 길잡이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에도 민족 저항 시인 및 관련 연구를 지속적으로 펼쳐 민주정신 함양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 평화롭고 자유로운 국가의 발전에 대한 기대도 잠시, 우리나라는 남북분단이라는 비극을 겪어야만 했다. 각각 미국과 소련의 군정 아래 놓이면서 남한은 이승만 정권에 의해 반사회주의적 단독 정부를 세웠다.
단독 정부를 반대하는 문학인들이 통일 운동을 벌였지만 독재 정권 아래 번번이 억압을 받았으며, 해방공간에서의 치열한 이념 대립과 6·25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도 깨어있는 문학인들은 통일운동을 전개했다.
문병란 시인은 이러한 민족정신과 문학정신의 계승발전에 앞장서 온 문학인으로 독재정권 시대 속에서도 시를 통해 통일과 민족을 노래했다. 그의 작품 중 ‘직녀에게’는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염원을 서정적으로 노래하는 시로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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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식민지기 저항시인들을 조명한 번역서 출간부터 최근 나주 출신 민족 저항 시인을 주목하고자 마련된 심포지엄까지 현시대 문병란시인기념사업회 발족이 갖는 의미가 남다른 이유다.
리 소설가는 앞으로도 문병란 시인의 민족정신과 문학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다양한 사업들을 지속할 것이며, 아직 중지를 모으지는 못했으나 그의 뜻을 기리는 기념관 설립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길을 제시했다.
지역 원로 문학가인 그는 마지막으로 광주·전남 문학계에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로 다산 정약용의 가르침을 인용했다.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글이야말로 시대 정신이 담긴 참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성, 사회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된다는 것이죠.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문학인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서 통일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진정한 문학인이 될 수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해요. 민족적 현실을 개탄하고 이를 동력 삼아 민족 화합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문학 활동을 기대해 봅니다.”
/최명진 기자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