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로 읽는 전라도 역사기행]밑으로부터 마지막 저항, ‘여수·순천 사건’

국가 폭력·이념 갈등이 빚어낸 상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아픈 역사

2022년 07월 06일(수) 19:11
여순사건 특별법 국회통과 1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포럼이 열렸다. 포럼에서는 ‘완전한 과거사 해결과 화합의 미래를 위한 향후 과제’를 주제로 다양한 의견이 논의됐다. 토론에서는 고성만 제주대 교수, 김낭규 변호사, 김석 순천YMCA 사무총장 등이 특별법 제정 의의와 개정 방안, 진정한 명예 회복을 통한 화합과 미래 등을 주제로 토론했다. 한편, 여순사건 특별법은 지난해 6월29일 국회를 통과했으며 올해 1월21일부터 시행됐다. <전남도 제공>
-‘한국전쟁은 사실상 1948년 10월 시작됐다’-
1948년 4월(대한민국 국가 수립, 1948년 8월15일), 이승만 체제의 최대위기는 제주도에서 저항과 이를 진압하려다 발발한 여수·순천사건(이하 ‘여순사건’)이었다.

부정선거에 대한 저항이 만만치 않은 가운데 좌파 세력은 곳곳에서 이승만 체제를 반대하면서 도전하고 있었다. 1948년 4월3일 발발한 제주도 민중저항은 정부수립 전후인 7월에 격화됐다.

제주도 민중저항은 중요한 시사점을 가진 사건이다.

분단국가 수립을 계기로 친일과 항일, 좌파와 우파 간의 대립이 과거와 달리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변해버렸다. 즉 남한에서의 좌파의 저항은 즉각 북한에 대한 지지로 받아들여 ‘적’으로 간주됐다. 건전한 좌익마저도 북한 사주로 규명지어 좌파 공격의 정당성을 만들어줬다.

이것은 남한의 자생적 저항세력에게 파멸적 결과를 초래하는 재앙이었다.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제주도 저항을 본격적으로 진압하기 위해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14연대를 투입키로 결정하고 병사들에게 10월19일 출동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14연대는 ‘동족상잔을 강요하는 제주도 출동명령 거부’를 주장하며 ‘여순사건’이 시작됐다.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은 사실상 1948년 10월에 시작된 것이다.

국무총리 겸 국방장관 이범석은 국회 의회보고를 통해 “공산주의자들은 여수에서 반란을 일으킴으로써 제주도 사태를 남한 각지에서 전개시키려 하고 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여수에서 군인들이 반발하자 이승만은 곧바로 제주도를 고립시켰다. 해군함정을 동원해 제주도 해안을 봉쇄하고 선박출입을 금지시켜 육지와 모든 연결을 차단했다.

여순사건으로 인해 위기감을 느낀 이승만은 1948년 가을과 1949년 봄 사이, 겨울에 제주도에 가공할 토벌작전을 전개했다.

제주도 사망자는 주로 이승만체제 수립 후(1948년 8월15일)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1년간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주도민의 ⅛인 3만여 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대부분은 민간인이다.

미국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토벌이 성공한 이유는 ‘민간인 대량살육계획’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미군이 추정한 사망자는 1만5천여 명이었으며, 그 중 80%가 군경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봤다. 이 기간 사망한 군경은 118명, 서북청년단은 40명뿐이었다.

북한의 사주를 받은 좌파와 전투를 했다는 이승만 정부의 주장은 두 세력 간의 사망자 숫자를 통해 전투에 의한 사망이 아님을 시사한다. 이는 국가폭력의 극치였고, 권력의 부도덕성과 잔인성은 국가 간의 전쟁에서보다 민간저항의 진압작전에서 잔인하게 드러난 것이다.

따라서 1948년 10월19일, 여수에서 일으킨 14연대 군인들의 반란은 동족상잔을 막기 위한 저항수단이었으며, 다른 반란과는 현저히 다른 것이었다.

정부에 대한 명령불복이라서 반란이라 규정하고 있지만 민중항쟁이 맞는 표현이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정부에 대한 저항이라는 취지에서 ‘반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더라도 이해해 주기 바란다.

이 저항은 단순한 군인들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여순사건은 진압 작전 과정에서 엄청난 인명·재산피해가 엄청나게 발생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총괄적인 통계는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수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었지만 그들의 이름은 물론이거니와 과연 몇 명이나 희생을 당했는지에 대한 통계도 제각각이었다. 현재 인명과 재산피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정부 각 기관에서 작성한 몇 가지 통계에 불과하다. 희생자에 대한 명확한 조사가 필요한 이유이다. <전남도 제공>

남한의 군인들과 여수 주민들은 친일파로 이뤄진 경찰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경찰의 반공만능주의, 또는 극단적 반공이 아니면 모두 빨갱이라는 파시즘적 사태인식을 못마땅히 여겼다. 경찰의 친일경력과 야만적 행태 때문에 군경은 고위직 지휘관들까지 반목을 일으켰으며, 사병들의 경우 더 심했다.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의 경우 좌파세력이 더 많았다. 특히 14연대는 미군정에 반대했던 세력들이 경찰의 추적을 피해 입대했다. 당연히 경찰과 친일행위에 대한 거부감이 높았고, 이승만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이들이 절반이상이었다. 그 결과 14연대가 반란을 선택했을 때 짧은 시간에 정당성에 동조했던 여수, 순천지역의 농민과 학생들이 대거 합류하였다.

14연대와 민간인으로 구성된 세력은 몇 시간 만에 여수의 주요 관공서를 점령했고, 반란 첫날, 날이 새기도 전에 여수 전 지역을 장악했다.

반란은 여수와 순천을 휩쓴 뒤 광양, 곡성, 구례, 고흥 인근 다섯 개 군으로 확산됐다.

마치 한국전쟁 초기처럼 반란군 세력이 당도하기도 전에 토착좌파가 경찰, 우익청년단, 친일파들을 공격했다.

벌교, 고흥, 보성, 광양 등에서는 경찰이 미리 도주해 무혈점령했다. 친일협력자와 경찰, 우익인사들이 반동과 반력자라는 이름으로 즉결처분이 행해졌다. 체포당한 경찰이 흥분한 군중들에게 밟히거나 몰매를 맞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반란은 오래가지 못했다.

10월20일, 군 수뇌부인 육군 총참모장 채병덕, 육군 작전참모부장 정일권, 정보국장 백선엽이 광주비행장에 도착했고, 반군토벌사령부를 광주에 파견했다.

군 지도부의 총력대응이었다. 38선에서 북한군과 대응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군사고문단’과 이승만 정부가 여순사건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사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초기 진압과정에서 진압군경은 반란군에게 밀렸으며, 군 자체가 지휘 불능과 병력붕괴 상태에 빠져 지휘체계 마비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전쟁 초기에도 재현됐다. 진압군 최고 지휘부끼리 지휘체계를 놓고 다투는 현상이 벌어졌다. 최초의 군사반란에 군은 흔들리고 있었다.

10월23일과 24일, 연속된 여수탈환작전에서도 군은 패퇴를 거듭했다.

육군에 의한 작전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승만은 미군을 끌어들였고, 26-27일에 걸쳐 육해공군 합동작전으로 여수시가지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제야 탈환에 성공했다. 많은 기록들이 표현하듯이 여수는 불바다가 됐다.

호남지구 전투사령부 발표에 따르면, 반란병사 200명, 무장한 민간인 1천명, 동조세력까지 합쳐 총 1만2천명이 저항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저항세력은 민간인이었다.

미군의 지원으로 간신히 진압에 성공했지만 이 사건은 이승만체제의 기반을 뿌리부터 흔들었다. 결과적으로는 이승만체제에 도전하는 좌파 봉기는 이승만체제를 강화시켜주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했다.


-민간인 등 7천여명 희생…철권통치 계기로-
<신광재 역사문화전문기자는 대학에서 고고학과 한국미술사, 한국사를 전공했다>
1948년 11월2일 전라남도 발표에 따르면, 사망·행방불명자만 여수와 순천에서 각각 4천800명과 1천935명에 달했다. 작은 두 지방도시에서 7천여명에 달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제주저항을 제외하면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많은 인명피해를 낳은 사건은 아직 없다.

이 사건으로 대중 속의 좌파는 이후 소멸됐다, 반란을 주도한 저항세력들은 산으로 이동했으며, 한국전쟁이 발발할 때까지도 계속된 긴 게릴라전의 시작이었다.

이승만체제는 이후 비로소 ‘반공으로 날이 새고 반공으로 날이 저무는’ 가공할 반공국가로 전환됐다. 여순사건을 계기로 이승만은 군대, 청년단, 학생들을 전부 지배체제로 묶어 철권통치를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

여순사건은 국가의 부당한 명령에 거부한 역사로 진압과정에서 민간인들이 국가폭력에 의해 많이 희생됐고, 악법인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진 계기가 된 국가폭력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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