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미안해, 정말 미안해 / 동시 - 이성자
2022년 07월 11일(월) 19:12
고추밭을 지나는데
까만 잡초매트 안에서
아스라이 외마디 비명 들린다

잠시 서서 귀 열고
두리번거리다가

잡초매트 살짝 들어 올리니
곧 숨넘어갈 것 같은 잡초들

누렇게 뜬 얼굴
오무락거리며
후흡후흡후흡
공기 들이마시느라 정신없다.

<이성자 약력>
▲ 명지대학교 대학원(문학박사)
▲ 동아일보신춘문예 당선
▲ 작품집 : ‘펭귄 날다!’, ‘피었다 활짝 피었다’, ‘기특한 생각’ 등 다수
▲ 광주문학상, 방정환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등 수상
▲ 이성자문예창작연구소 운영

- 평 설 -
이성자 님의 동시 ‘미안해, 정말 미안해’에서의 시적 화자는 고추밭을 지나다가 까만 잡초매트 안에서 비명 소리를 듣게 된다. 까만 잡초매트라는 짓눌린 삶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린 생명들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유치원 시절부터 무한경쟁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이 보이는 듯해 안쓰럽다. 아이들의 걸음이 또래와의 관계 속에서 행복해야 하는데 친구의 오른발보다 자신의 왼발이 앞서야 한다고 강요받고 있는 현실. 앞서지 않으면 뒤쳐지니 앞만 보고 달리라는 어른들의 강요로 아이들은 얼마나 마음이 불안하고 아플까. 친구들과 서로 마주보며 눈맞춤도 하고 수다도 떨고 깔깔거림이 가득하게 웃고 싶을 텐데. 시적 화자는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누렇게 뜬 얼굴/ 오무락거리며/ 후흡후흡후흡/ 공기 들이마시느라 정신없’다라고 에둘러 말하고 있다. ‘공기 들이마시느라 정신없다’라는 표현에서 마음이 아프다. 햇살의 손을 잡고 바람의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살아가야 하는데 단지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 공기를 들이마신단다. 시적 화자와 함께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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