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은 흐른다 / 주홍

2022년 07월 14일(목) 19:34

주홍 치유예술가

사진은 사라진 시·공간의 기록이다. 우리가 마주한 것들은 보는 순간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찰라생 찰라멸’의 이 세계에서 어디를 바라보고 셔터를 누를 것인가? 사진은 사진작가가 그 시공간을 정지시켜 우리에게 어떤 기억을 불러낸다. 그래서 사진은 창조적이고 주관적인 세계다.

영산강은 나와 아무 상관 없이 흐르고 있었다.

김지연 작가의 사진을 보다가 영산강 곁에서 내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일상으로 영산강이 들어온 것이다.

‘영산강, 그 강이 광주를 지나고 남도를 관통하고 서해로 흐르고 있었구나!’ 나는 몰랐다. 유채꽃이 만발할 때면 탄성을 지르며 봄날이 간다고 노래하던 그 강, 서창에서 부모님과 억새풀밭 사이를 걸을 때도 나는 영산강인 줄 몰랐다. 어느 밤, 황룡강에 비친 달을 보면서 2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나는 영산강인 줄 몰랐다. 남도 의병들의 치열한 저항과 죽음 수탈의 역사를 듣고, 영산포에서 홍어를 먹고 목포 고하도에서 일제 강점기의 태평양전쟁 가미카제 동굴들을 보면서도 영산강물이 그곳에 흐르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김지연의 사진 속 영산강은 내가 답사를 하며 찾아간 그 영산강이 아니었다. 유채꽃을 보며 탄성을 지를만한 장면도 없고 노을을 배경으로 억새 숲이 무성한 그 가을의 영산강 변도 없다. 역사적인 유적지도 그 화면의 주인공이 아니고, 아름다운 서정을 담아낸 사진도 없다.

김지연의 영산강은 노을을 배경으로 단장하고 있지 않았다.

김지연의 사진은 목표물을 찍기 위해 그것을 기다렸다가 찍은 사진이 아니다. 무심히 강을 걷다가 어떤 장소가 말을 걸어오면 ‘그랬군요!’하고 고개를 끄덕이듯 카메라에 담아온 것이다. 사냥감이 잘 나오는 곳에 대기하고 있다가 희귀하거나 먹음직스러운 것을 발견하면 총 쏘듯이 누르는 그런 사진이 아니다.

그의 사진에는 잡풀이 무성한 무너진 빈집이 나타나기도 하고 공사를 멈춘 활주로, 멀리 시골 마을이 보이다가 느닷없이 땅이 파헤쳐진 벌건 공사장, 저 멀리에 아파트 단지가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강과 바다가 만나는 강의 끝, 목포 고하도에서 사라져가는 낮은 집들이 있는 골목이 나타나고 바다가 된 영산강 그 강물을 마주한다.

작가의 탯자리, 서창의 할머니 집을 찾아간 그 자리가 영산강 변이었다는 사실을 60이 넘은 나이에 발견하고 강물을 따라 걸어가며 찍은 사진들이다. 2년간 카메라를 들고 영산강을 찾았던 김지연은 자신이 태어나고 유년을 보낸 강, 모든 것을 받아주던 할머니가 살았던 집과 중학교를 지어 학생들을 가르치고자 했던 아버지의 학교가 사라진 자리를 무심한 시선으로 담고 있다. 영산강의 시간 속에서 사라져버린 작가 자신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아직도 강물이 탁하게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지연은 영산강의 물을 마주하는데 더디고 긴 시간이 걸렸다. 태어나고 자라고 놀았던 그 강물이 영산강인 줄 몰랐다. 지천에 두고 나처럼 몰랐다.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진이 밖에서 그 강물을 바라보게 한 것이다. 특별하지 않은 일상적인 포착이고 김지연의 영산강이지만, 나는 그동안 내가 영산강 주변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 사진들을 보며 깨달았다.

김지연은 사라져가는 일상의 시간을 보여준다. 객관적으로 거리를 둘 수 있는 사진으로 이 장소가 사라지면 삶이 어떻게 바뀌는지 한 장의 사진으로 화두처럼 질문했다. 김지연 작가는 우리 일상에서 삶을 함께 일구던 정미소나, 구멍가게, 이발소 등 사라져 가는 장소들로 집단 무의식을 건드렸다. 그 사진을 보면 어린 시절 소소한 이야기들이 끝없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산강이다. 김지연의 영산강, 그 탁한 물에 비쳐 흔들리며 사라지는 자기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귀한 전시다.

강물에서 ‘나’를 발견하게 하는 김지연 작가의 영산강 사진전은 8월10일까지 갤러리 생각상자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