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천지 ‘호남가비’ 앞에서 / 탁인석
2022년 07월 19일(화) 19:42
탁인석 광주문인협회 회장
2022년 7월9일 11시. 함평나비공원에 우리 지역 최고의 문화자산인 호남가비를 제막했다. 날짜와 장소를 일부러 명기한 것은 단순히 비 하나를 세운다는 의미를 넘어선 때문이다. 호남가(湖南歌)가 어떤 노래인가. ‘함평천지’로 시작하면서 호남 전체의 지명을 아우르는 불멸의 노래인 때문이다. 인간이 언어로 불멸의 예술을 만든다는 생각이 호남가를 접하면서 새삼 떠오른 생각이다. 호남가는 함평을 시작으로 제주를 포함한 호남의 54개 고을이 감기는 가락으로 엮어져 있다. 이들 호남의 고을명은 순간순간 그 지역의 특색과 풍광을 동반하면서 살아 움직이는 감동을 선사한다. 호남가는 작자미상으로 돼 있으며 구한말의 노래로 보인다. 구한말이 어느 때인가. 국가는 동력이 쇠진한 채 사회는 병들고 백성의 살림은 극도로 곤궁하던 때이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동학(東學)군이 민족에게 희망의 불씨로 지펴질 때 호남가는 무엇이었을까. 노래는 시대의 반영이라는데 유행했던 노래들을 들춰보면 그 의미가 그리 잘 나타날 수가 없다.

때가 때인 지라 호남가의 작자는 큰 의미가 없고 하등 밝힐 필요 또한 없지 않았을까. 풍전등화가 된 나라에서 민족을 일으키는 노래의 익명성은 필연이기도 하다. 호남의 고을명을 두루 거명한 것은 우리네 천석고황을 하나하나 짚어가는 의미에 값한다. 마지막 구절처럼 ‘삼천리 좋은 경은 호남이 으뜸이라. 거드렁거리고 살아보세’에 이르면 이 땅의 민중이면 누구나 절로 어깨춤이 덩실거려졌을 법하다. 삼천리가 전부 우리 땅이고 가장 좋은 삶의 터전이 호남이라는 자부심으로 이 험난한 세상을 이기고 살아보자는 소망이 읽히는 것이다.

호남가는 구한말을 거쳐 일제강점기로 오면서 민중 속의 노래로 불리다가 임방울 명창(1904-1961)을 만나면서 대유행의 길에 들어선다. 임방울선생은 광주출신 소리꾼이고 광주광역시 조례로 ‘임방울국악상’이 시상되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적인 소리꾼 임방울 국창의 목소리로 호남가가 불렸으니 민중의 환호 또한 얼마나 컸으랴. 임방울선생은 민족사적으로 어려운 시대를 살다간 가객이었다. 9세에 소리 공부에 입문했다고 하나 이건 추측일 수도 있다. 우리 지역의 문인 중에 ‘강산에 늘봄잔치’라는 원로시인이 있는데 이 분의 선대가 많은 농토를 소유한 이른바 땅부자였다. 임방울 선생은 생계가 어려웠던지라 강시인의 집에서 깔담살이(머슴)를 살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송정극장에 창극이 들어왔다는 소문을 듣고 몰래 구경을 간 뒤로 일주일을 넘기도록 들어오지를 않아 찾아 나섰더니 웬걸 창극단의 노래에 빠져서 그곳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문지기를 살더라는 것이다. 이런 임방울이 호남가를 불렀으니 사랑받는 민중에게 그 반응이 폭발적이었을 것은 불문가지. 호남 출신이면 누구나 이 노래를 들으면 어깨부터 들썩거렸다. 특히 첫머리인 ‘함평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을 보랴하고’까지는 저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그래서 호남가는 몰라도 ‘함평천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고 그로 하여 제목조차 ‘함평천지’인줄 아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이번 함평에서 세운 노래비의 일은 잘한 일이고 널리 추장할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지역문화 활동가 지형원 문화통 발행인이 발의하고 전국의 함평 향우들과 호남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발벗고 나서 이뤄낸 쾌거이다.

이번 함평의 호남가비의 건립은 이 일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 전부터 우리 지역에서도 이에 뜻있는 장세영, 강원구, 김종, 기세규, 필자 등이 호남가비를 구상해왔고 호남가 박물관 또한 꿈꾸어왔다. <호남가>는 출향인을 포함 1200만 호남인의 망향가이다. 적지를 잡아 광개토대왕비보다 더 크게 호남가비를 세우고 호남가 박물관 또한 세우자는 것이다. 재원은 각 지자체가 십시일반하고 고을마다 서예가를 초치하여 439자를 조합해가면 호남가비나 박물관은 호남 최고의 볼거리가 되기에 손색이 없겠다. 호남가비 세우기는 이제부터다. 그 위치는 어디로 할까. 호남가 끝부분에 ‘남평루’가 등장하고 광주와 혁신도시 중간이니 삽질할 일만 남았다. 호남가비 세우기는 ‘호남가의 자화자찬’에서 시작해야 한다. 호남가는 가히 호남공화국의 호남애국가로 손색이 없다. 이번 제막식에서 호남가는 창唱으로만 묶어둘 일이 아니라는 것도 확인했다. 랩으로도 재즈로도 변환하면 그 흐름에 맞게 얼마든지 다양하게 불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가장 지방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은 새삼스런 화두이고 위대한 k컬처가 될 전망 또한 크고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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