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64)

다만 노 젓는 소리만이 고요하게 들릴 뿐인데

2022년 07월 26일(화) 18:55
湖堂朝起(호당조기) / 취죽 강극성
강위에는 아직도 해가 뜨지 않고
안개 속에 자욱하기 십리나 되는데
노 젓는 소리 들리나 배 간 곳 안보이네.
江日晩未生 滄茫十里霧
강일만미생 창망십리무
但閑柔櫓聲 不見舟行處
단한유노성 불견주행처


호당은 조선 시대, 젊고 유능한 문관에게 휴가를 주어 오로지 학업을 닦게 했던 일종의 휴가제인 서재(書齋)다. 독서당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젊은 문신들에게 휴가를 줘 독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사가독서제를 실시한데서 비롯된다. 독서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자택으로 한정됐으므로 독서에만 전념하기에는 다소 미흡했다. 강 위에는 아직도 해가 떠오르지 않고, 십리나 안개가 자욱하여 어디인들 분간키가 어렵구나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다만 노 젓는 소리만이 고요하게 들릴 뿐인데(湖堂朝起)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취죽(醉竹) 강극성(姜克誠:1526-1576)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1546년(명종 1) 진사가 됐고 155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3년 뒤 다시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여 문명을 떨쳤다. 1563년 검상, 사인을 거쳐 군자감정에 올랐던 인물이다. 사가독서 때 임금에게 바친 시로 찬탄을 받았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강 위에는 아직도 해가 떠오르지 않고 / 십리나 안개가 자욱하여 어디인들 분간키가 어렵구나 // 다만 노 젓는 소리만이 고요하게 들릴 뿐인데 / 배 지난 곳인들 아무 곳도 보이지 않는다’라는 한 덩어리 시상이다.

위 시제는 ‘호당에서 아침에 일어나서’로 번역된다. 호당(湖當)을 독서당이라 했는데 세종 때 처음 실시했다. 이후 많은 변천이 거듭되어 사가독서로 했다. 현대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어 시험을 통해 승진하는 고위직에게 휴가를 주어 공부에 매진할 수 있도록 했던 제도다. 사무관-서기관-관리관이란 승제제도에서 시행했던 제도로 후한 대접이 아니냐는 비아냥거림도 받았다.

시인이 바라고 있는 전경은 강을 바라면서 해가 떠오르지 않았는데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는 선경의 시상은 마냥 넉넉해 보인다. 강 위에는 아직도 해가 떠오르지 않고, 저 멀리까지 십리쯤이나 보였던 곳까지 안개가 자욱하여 어디인들 분간키가 어렵다고 했다. 우리에게 다정하게 다가선 것은 안개 속에 꼭꼭 숨었다가 다시 나타내는 부침을 보여주기 때문이리라.

화자는 짙은 안개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한 소리만이 들려왔으니 노 젓는 소리였음이 시상의 그림으로 떠올랐다. 다만 노 젓는 소리만이 고요하게 들릴 뿐, 배 지난 곳인들 아무 곳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물이 있는 강이나 내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한국적인 전경이다.

※한자와 어구

江日: 강 위의 해. 晩: 늦도록. 未生: 떠오르지 않다. 滄茫: 창하여 아득하다. 十里: 십리. 먼 곳까지. 霧: 안개가 끼다. // 但: 다만. 閑: 한가롭다. 柔: 부드럽다. 櫓聲: 노 젓는 소리만이. 不見: 보이지 않는다. 舟行處: 배가 현재 있는 곳(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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