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칸나 / 이희정

2022년 08월 07일(일) 19:08

이희정

태양이 낳은 파편들에 꼬리가 물렸다
직립을 뿌리에 걸고 쿨럭이는 저 행렬
마침내 가닿은 붉은 별
심장은 불을 긋는다

폭염이 진동하는 칠월에 생을 틔워
제 몸보다 뜨거운 축제장을 배회하다
단 한 번
회약고처럼 터지는
눈부신 상처
(시집 ‘내 오랜 이웃의 문장들’, 시인동네, 2022.)

[시의 눈]

저수지로 올라가는 길목입니다. 한 오두막이 나옵니다. 영감님 내외가 두부를 만들어 파는 그 집엔 울타리 빙 둘러 칸나가 우거졌습니다. 무성한 칸나 숲이 되기까지 그 정성은 대단했지요. 물과 거름은 물론, 키 큰 칸나가 넘어지지 않게 대나무를 각각 세워 놓았더랬어요. 헌데 칸나의 불꽃은 사실 누나였습니다. 꽃이 ‘불’을 그을 때 누나는 ‘쿨럭’여 대곤 했지요. 그러면서 캔바스에 가득 칸나꽃을 앉혔습니다. ‘축제장’의 불꽃이 ‘화약고처럼 터지’는 무렵 누나의 결핵은 핏빛이었습니다. 칸나꽃으로 미어진 가슴을 어찌 견뎠을까요. 동구를 떠나며 쏟은 각혈이 이 여름에 오버랩됩니다. 누나의 꽃에 박힌 내 붉은 울음도 거기 담겼지요. 그후 피꽃은 도시로 와 오래된 아파트처럼 천천 회색이 되고 말았구만요. 칸나가 있던 자리엔 폭염의 꽃이 무성합니다. 이희정 시인은 경남 김해에서 나, 2019년 경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습니다. 그는 시의 생각을 또다른 시로 바꾸어 재의미화하는 그 액자 속 퍼소나를 즐겨 등장시키는 시인입니다. <노창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