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산 학자’ 박석무의 뚝심 / 이재의 |
| 2022년 08월 08일(월) 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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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뚝심과 끈기다. 다산 정약용 사상의 DNA는 2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박석무라는 걸출한 학자를 통해 복제되고,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누구나 인정하는 ‘다산 전문가’다. 500여권이 넘는 저술과 2천700여편의 시 등에 담긴 다산의 방대한 사상은 그를 통해 오늘날 대중화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글은 읽기 편하고 이해하기 쉽다. 다산 사상체계의 핵심을 잘 소화해 오늘의 언어로 매우 쉽게 풀어쓰기 때문에 중고등학생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의 노력은 미래세대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치 중세 유럽에서 라틴어가 사어가 됐듯이 ‘한자’ 언어가 우리의 일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중국에서 마저도 간자를 사용하다보니 더욱 접할 기회가 없다. 요즘 젊은이들은 한자를 영어보다 훨씬 어려운 외국어의 하나로 인식한다. 그런데 우리 조상의 지혜가 담긴 값진 저작물들은 전부 한자로 돼 있다. 전통사상의 몰이해는 언어의 단절에서 비롯된다. 박석무의 글은 ‘언어 단절’의 강을 훌쩍 뛰어넘어 다산 사상의 정수를 미래세대가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강진에서 18년간이라는 긴 유배 생활 중 수 많은 책들을 집필하는 동안 다산을 가장 괴롭혔던 생각은 바로 이점이었다. 자신이 쓴 책들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사람들에게 읽혀질까 하는 염려였다고 한다. 이런 생각은 다산이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 절절하게 담겨 있다.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유배가 언제 풀릴지도 모르는 막막한 상황에서 세상의 이치와 공직자의 윤리, 농지제도 개혁방안, 형법 등 경세에 관한 책들을 쓴 다산의 처지를 고려한다면 이런 생각이 더욱 간절했을 법하다.
다산이 박석무라는 후대의 학자를 만나면서 이런 우려는 말끔히 사라지게 됐다. 그의 글은 18년간 지속적으로 36만명의 독자들에게 이메일로 전달되면서 우리 지성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매체를 활용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 필자 역시 이메일을 열면 ‘받은 편지’에 배달되어 있는 다산이야기를 가급적 빠트리지 않고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혼란스런 사회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다산의 깊은 사유를 이렇듯 손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위대한 사상가이자 경세가(經世家)인 다산 정약용 선생의 개혁정신과 인간 사랑의 정신,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철학을 오늘의 시대정신으로 승화시켜 보다 밝고 깨끗한 세상을 만드는데 이바지하고자 한다.” 2004년 6월 다산연구소가 출범할 때 박석무 이사장이 쓴 인사말이다. 이달 1일 1천2백 회째를 맞아 쓴 박 이사장 글의 제목은 ‘다시 공렴(公廉)의 세상을 희구하며’이다. 그동안 정권이 5번이나 바뀌고, 국민소득 2만 달러에서 3만5천 달러에 이르는 경제강국으로 크게 변했지만 그동안 쓴 1천199번의 칼럼 속에서 전하는 핵심메시지는 일관되게 『목민심서』에 담겨 있는 ‘공직자의 공정과 청렴’이다.
다산의 시선을 통해 현실을 비판하는 그의 언어에서는 자못 준열함이 느껴진다. “촛불 정부를 자처하던 정권 또한 공정과 청렴의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해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고, “공정과 상식을 외치며 청렴한 세상을 만들겠다”며 선거에 승리한 새 정권 역시 아직 확신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다산이 오랜 유배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조선 말기 부패한 사회를 개조하려는 정조의 개혁정책을 뒷받침한 핵심 사상가이자 실천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건은 ‘황사영 백서사건’(1801년) 연루설 때문이었다. 그 사건은 김훈의 소설 ‘흑산’에 잘 묘사돼 있다. 당시 막 조선에 들어온 천주교에 대한 성리학자들의 박해는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잔혹했다. 황사영이 프랑스 선교사를 통해 천주교를 접했던 시기는 프랑스혁명(1789년)의 진행기였다. 천주교가 당시 조선에서 참혹하게 배척된 것은 단지 성리학과 세계관이 달랐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천주교를 통한 유럽 대륙의 혁명적 기운이 부패한 봉건사회의 관료들, 특히 당시 정권을 뒤흔들고 있었던 노론을 중심으로 한 골수 성리학자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혁신적인 사상이 대중과 만나면 큰 사회 변화를 가져온다. 박석무 이사장이 젊은 시절부터 다산의 저작물에 주목했고, 평생 대중화에 매진해온 것은 다산 사상의 혁신성이 대중과 만났을 때 가져올 변화에 대한 꿈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