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이 유고시집 ‘캣스크래치’ 발간 부정형의 언어로 그려낸 ‘스크래치 가득한 세계’ 최명진 기자

2022년 08월 28일(일) 19:00

스물다섯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백설이(사진) 시인의 유고시집 ‘캣스크래치’(문학들刊)가 발간됐다.

1996년 인천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성장한 백설이 시인은 201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에 입학해 매거진 ‘K-Arts’,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사 기자로 활동했다. 빼어난 문학적 기량과 열정으로 장래가 촉망됐으나 지난해 4월 유명을 달리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시집에는 그의 유작에서 고른 45편의 시가 수록돼 있다.

‘고양이와 사람에 관하여’, ‘돌아온 몬탁 괴물’, ‘부목 채집’ 등 세계에 대한 시인의 비극적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시편들과 ‘투입구에 사물을 넣지 마십시오’, ‘기두’, ‘스파 미도리’, ‘모자를 찾아서’ 등 사랑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생에 대한 희구를 ‘모자’를 찾는 행위로 노래한 시편들, 그리고 ‘잠자리 세기’, ‘공복’, ‘폐쇄병동’ 등 현실과 단절된 세계에서 죽음을 암시하는 시편들이 담겨있다.

백설이

스크래치로 가득한 세계. 시인은 계획하거나 정련할 수 없는 세계와 존재의 불협화음을 스크래치하듯 그로테스크한 부정형의 언어로 그려냈다. 시인의 시가 강렬한 것은 그의 삶이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우리가 늘 겪는 일상의 세계 너머, ‘백설이라는’ 시인의 세계에 이미 들어가 있었다.

또한 이번 시집에는 시인의 스승이었던 안희연, 이영주 시인과 권희철 문학평론가가 각각 쓴 해설과 발문, 표사가 담겨있다.

이영주 시인은 이 책에서 그를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나는 그의 세계가 불타오를까 걱정이 됐다. 합평 시간에 자주 말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슬픔을 전파하면 다들 부담스러워할 거야. 백설이, 조금 더 미적 거리를 두어 보자. 그럴 때면 백설이는 눈을 빛냈다. 선생님, 저는 이 세계 안에 들어가 있는데요? 미적 거리 따위가 진실을 말할 수 있나요.”

비록 더 이상 그의 새로운 작품들을 만날 수는 없겠지만, 시인의 시에 대한 열정은 그의 에세이 ‘풀려나는 존재, 운동하는 가능성 - 시와 리듬’을 통해 느껴볼 수 있다.

“굳건하게 맺힌 걸쇠에서 존재를 풀어주는 일, 그런 일을 누가 하는가? 바로 시인이다. (중략) 풀려난 존재는 어디로든 튀어나갈 힘을 지니고 있다. 마구마구 튀어오르고 뻗어나간다. 불안하게 흔들린다. 그 속에서 존재가 가진 ‘리듬’이 발견된다. 내가 되고 싶은 시인은 이 불가능적인 리듬을 가능하게 하는 자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