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마당]낙엽, 말을 걸어오다 / 시 - 김양자
2022년 09월 05일(월) 19:08
의식 끝에서 만난 적 있지, 우리

딱, 이맘때
헐렁한 여름 꼬리가 초가을 햇살에 밟힌 오후였어

자전거는 벚나무 터널을 신나게 내리꽂고
때 이른 너는 다이빙하듯 나의 고굴 속으로 내리꽂히고

한쪽 눈을 가리고 끈덕지게 놓지 않던 너
끝내 무사하지 못하고 응급실에 나란히 누운 우리
왜 그랬는지 물어도 시무룩하니 말이 없고
버석한 살빛은 웅크린 시간을 대변하네

피치 못한 사정이 있겠지 생각하다
토실토실 잘 늙어가고 있는데 어쩌자고 뉘어 놓고
허락 없이 내 품을 차용하는지 우울해하다

어쩌면 생이 버거워 툭, 내던지는 마음이 나였을 거라는
맞아, 우리는 평생 실하지 못했어
상처가 상처를 낳고

가끔은 허술한 생각끼리 맞대고 싶은지 몰라
부딪쳐 물렁 터질지라도
마주 보고 아무렇지 않게 너털너털 웃을 수 있는 여유가 그리운거야

버석거린 생각끼리 마주하면 촉촉해지려나
차가운 마음끼리 데우면 따뜻해지려나

<김양자 약력>
▲ 시집 : ‘봄, 바람에 기울다’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전남대 교수 역임
▲중앙일보 신춘문예당선
- 평설=박덕은 문학평론가
김양자 님의 시 ‘낙엽, 말을 걸어오다’에서의 시적 화자는 낙엽이 말을 걸어오자, 사색의 공간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낙엽과의 만남 공간은 의식의 끝자락이다. 내밀한 얘기를 꺼내도 좋을 것 같은 공간이다. 그곳에서 낙엽과 만나고 있다. 그 낙엽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멍자국 같은 지난날의 이야기, 지축을 울리며 달려왔을 생의 지친 발소리, 빈 껍질 같은 하루만 바스락거리는 아쉬움 등등을 의미할 것이다. 시적 화자는 그런 상징을 지닌 낙엽에게 왜 한쪽 눈을 가리고 끈덕지게 나를 놓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낙엽은 말이 없다. 다만 버석한 살빛으로 웅크린 시간을 대변하고 있다. 낙엽은 시적 화자의 또 다른 자아이며 깊은 내면의 목소리이다. 여기까지 오느라 아픔을 숨기며 울음을 참아낸 지난날의 나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문득 일상을 잘 살고 있으면서도 우울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런 마음을 시적 화자는 ‘토실토실 잘 늙어 가고 있는데 어쩌자고 뉘어 놓고/ 허락 없이 내 품을 차용하는지 우울’하다고 말하고 있다. 참 멋진 표현이다. ‘토실토실’이라는 중의적인 표현이 멋스럽다. 유머러스하면서도 가볍지 않다. 남 보기에 좋은 집과 차를 가졌으니 알토란 같이 토실토실한 삶을 살았다고 표현한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속은 허한데 겉만 토실토실하다는 그런 의미로 썼을 것이다. 이 시는 낙엽을 의인화하여, 대화 나누며 사색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 함께 의미방울을 만들어 가는 솜씨가 세련되어 있다. 상징과 이미지, 사물의 새로운 해석을 밑바탕에 깔면서, 시적 형상화를 구축해 나가는 솜씨가 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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