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471)

한 해의 근심과 기쁨 모두가 이 꽃가지에 달려 있네

2022년 09월 13일(화) 19:34
此翁(차옹) / 아계 이산해

꽃 피면 날마다 시골 스님 만나고
꽃 지면 열흘 지나 대사립 닫는데
모두들 우습다 하나 근심 걱정 꽃가지에.
花開日與野僧期 花落經旬掩竹扉
화개일여야승기 화락경순엄죽비
共說此翁眞可笑 一年憂樂在花枝
공설차옹진가소 일년우락재화지

나이가 연만해지면 어쩐지 자기 주변을 챙긴다. 사람도 챙기고 물건도 챙긴다. 사람을 만나자고 해놓고 문을 걸어 잠그고 밀폐된 공간을 만들어 낸다. 사립문이라도 열어두면 어서 들어오라는 표시가 되련만 그마저 차단된 공간을 만든다. 노인의 모습을 보며 쑥덕거리기 일쑤다. ‘저 늙은이는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면서. 꽃 피면 날마다 시골 스님과 만나자고 약속하더니, 꽃 지면 열흘이 지나도 대사립을 닫는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한 해의 근심과 기쁨 모두가 이 꽃가지에 달려 있네’(此翁)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1539-1609)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1558년 진사가 되고 1561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문장력을 인정받아 명종의 명을 받아 경복궁 대액을 썼는데 여러 벼슬을 거쳐 1588년 우의정에 올랐고,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질 때 북인의 영수로 정권을 장악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꽃 피면 날마다 시골 스님과 만나자고 약속하더니 / 꽃 지면 열흘이 지나도 대사립을 닫아놓네 // 모두 말하기를 이 늙은이는 참으로 우습다 하니 / 한 해의 근심과 기쁨이 꽃가지에 달려 있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이 늙은이 좀 보게’로 번역된다. 나이 들면 마음까지도 늙어버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음이 더욱 젊어지면서 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꽃가꾸기를 좋아하면서 자기 취미를 삼는 사람도 있다. 더욱 젊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다. 시상의 흐름이 시적인 상관자를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을 지칭하는 경우도 많았음을 볼 때 시심의 훌륭함을 본다.

시인은 꽃을 좋아하는 노인의 생활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선경의 시통은 철철 넘치는 모양을 본다. 꽃이 피면 날마다 시골 스님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꽃이 지면 열흘이 지나도 대사립을 닫고 문밖출입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꽃에 흠뻑 취했던 노인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음을 알게 한다.

화자는 다름 아닌 자신의 허탈한 심정을 노정해 내더니만, 합리적이며 긍정적인 자기 대답을 이끌어 내놓는 멋을 부린다. 모두들 말하기를 이 늙은이는 참으로 우습다고 말을 하니, 한 해의 근심과 기쁨이 모두가 꽃가지에 달려 있다고 했다. 이 쯤 되면 시제를 아예 ‘차옹’(此翁)이 아니라, ‘화옹’(花翁) 쯤으로 바꾸어 놓는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한자와 어구

花開: 꽃이 피다. 日: 날마다. 與: 더불어. 같이하다. 野僧期: 시골 스님과 약속하다. 花落: 꽃이 떨어지다. 經旬: 열흘이 지나도. 掩竹扉: 대나무 사립문을 닫다. // 共說: 다 함께 말하다. 此翁: 이 늙은이. 眞可笑: 참으로 가히 우습다. 一年: 일 년, 憂樂: 근심과 즐거움. 在花枝: 꽃가지에 있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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