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어머니의 그림 / 주홍
2022년 09월 15일(목) 19:47
주홍 치유예술가
“오메, 나는 못 배워서 그림을 그려 본 적이 없어! 파는 잘 다듬어도 그림은 못 그린당께!”

“어머니, 파 다듬고 김치 담듯이 그리시면 되죠. 그림 그리는 게 훨씬 쉬워요!”

오월어머니들이 열두세분 쯤 모여서 수다도 떨고 그림 그리며 회포를 푸는 수요일이다. 92세 어머니는 등이 굽었어도 한 번도 빠짐없이 나와서 그림을 그리고 진도 판소리도 구성지게 불러주신다.

올해는 운이 참 좋은 해다. 몇 년 전부터 오월어머니들이 그림을 그리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연락이 온 것이다.

“오월어머니집인데요. 매주 수요일 어머니들께 시간 내주실 수 있어요?”

오월어머니집 김형미 회장님의 목소리에 어머니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었다.

“그럼요! 무조건 시간 내서 어머니들 뵈러 가겠습니다.”

1980년대를 살아온 광주시민이면 누구나 군부독재에 의한 오월의 트라우마가 있지만, 가족을 잃은 분들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오열했던 그 당시로 감정이 다시 돌아가 버린다. 오월어머니들, 억울한 죽음에 분통터진 세월의 한을 품고 얼마나 많은 시위현장에서 소리쳤는가? “내 아들 살려내라!” 금남로 바닥에 누워 “탱크야, 장갑차야, 나를 깔고 지나가라!” 하며 민주주의 최전방 전위부대로 살아오신 오월어머니들이다. 뵙기만 해도 가슴이 아려온다.

“어머니, 먼저 떠난 가족이 떠오르는 물건을 하나 그려볼까요?”

“신발이여. 나는 이쁜 구두만 보면 우리 경철이가 생각나네. 서울에서 구두 만드는 기술 배워 왔었는데…. 수제화점 차려서 엄마 호강시켜준다고 했던 우리 착한 아들 경철이가 생각나네” 눈물이 섞인 눈빛으로 필자를 보며 공수부대의 만행을 이야기하신다. 결국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그러자 옆에서 회장님이 “어머니, 노래 잘 하시잖아요. 망월동 건너가세 노래해 주세요” 하고 화제를 돌리자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신다. “망월동 건너가세. 망월동 건너가세” 눈물 글썽이며 부르는 어머니의 노래를 들으며 그림을 그렸다. 어머니들 그림에는 신발이 많이 등장했다. 살아있을 때 잘 신었던 남편의 검정 고무신, 예쁜 꽃무늬의 구두, 여럿이 묶여서 끌려가는 장면, 리어커에 실려서 전대병원으로 들어가는 장면도 있고 동백꽃도 등장했다.

오월어머니들은 그림을 그리며 울다가, 그려진 그림이 이상하다고 웃다가, 그 당시의 감정이 울컥하고 또 올라와서 울다가 옆에서 그림 잘 그린다고 칭찬하면 또 웃는다. 어머니들은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울면서 그림을 완성했다. “내가 학교를 못가고 배우지를 못해서 그림이 요상허제?” 어머니들은 못 배운 것도 한이다. 남아있는 자식 키우느라 그림 그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는 어머니들이 가장 잘 아는 것은 밥상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밥상을 그리기로 했다.

“어머니, 그림 그리기는 어려워도 김치는 잘 담으시죠? 그림 밥상 한 번 차려볼까요?

좋아하는 반찬 하나씩 그려보세요.”

“나는 고등어!”, “나는 굴비!”, “나는 배추김치!”, “나는 잡채여!”, “나는 된장국!”, “나는 꽃게장!”, “나는 샐러드!”, “나는 김치찌개!”…. 어머니들 반찬 메뉴가 끝없이 등장했다. 밥은 오월을 지탱한 공동체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들은 그림을 그리시며 반찬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셨고 생선을 그리시며 싱싱한 놈 고르는 법도 가르쳐 주셨다.

오월어머니들는 그림을 그리시며 오월 주먹밥 이야기를 하셨다. 2014년 세월호 어머니들과 오월 주먹밥을 같이 먹으며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는 것이다. 눈물의 주먹밥을 먹어보았는가! 오월 주먹밥은 1980년 5월10일간의 항쟁에서 시민군을 먹여 살린 여성의 힘이다. 대동세상의 상징이다. 오월어머니들은 밥상을 그리면서 신이 났다. 배추며 무, 가지, 파, 고등어, 갈치, 고추…. 너무 잘 아는 것들이라 그리기도 쉽고 할 말도 많다. 어머니들의 자존감은 밥상을 그리면서 높아졌다. 평생 밥을 하며 뒷바라지로 세월을 보내고 얻은 지혜는 소박한 밥과 반찬 그림에 그대로 담겨있었다. 오월어머니는 그림 밥상을 차리며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자기 자신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 뭔지 모르고 살았당께. 오월에 그토록 예쁜 꽃이 피고 있었는데 모르고 살았어.” 오월어머니는 오월이면 꽃도 보이지 않았고 웃을 수도 없었고 밥도 제대로 넘기지 못한 세월을 견디며 남은 자식들을 키우고 군부독재에 앞장서서 투쟁하신 것이다. 우리는 이 그림들이 하는 말을 이제는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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