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오크러시는 이미 왔다 / 천세진
2022년 09월 18일(일) 19:13
천세진 문화비평가·시인
2006년 <이디오크러시 Idiocracy>란 영화가 개봉됐다. 이디오크러시는 Idiot(바보)와 Cracy(정부, 통치)의 합성어로, 바보가 통치하는 사회를 뜻한다. B급 코미디 영화로 분류되었는데, 전 세계인들의 평균 지능(IQ)이 60대까지 떨어지고 바보들이 인류의 주류가 된 500년 뒤 가상의 미래사회를 상정한 영화였다. 황당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다.

영화가 과장된 상황을 연출하기는 했지만, 맥락을 짚어보면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바보들의 사회’는 반지성주의가 만들어낸다. 반지성주의는 이미 ‘지성, 지식인, 지성주의를 적대하는 태도와 불신’이라는 개념적 상황을 넘어서서 특정 국가를 막론하고 지구촌 모든 국가와 사회에 깊이 침윤된 사회 생태적 현상이 되고 있다.

지구촌의 운명에 그다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폭력적 시스템을 가진 나라들의 경우 여전히 반지성적 권력자들에 의해 국가의 운명이 결정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지구촌의 운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 선진국들의 경우는 국가의 운명을 대중이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

‘투표=민주’라는 공식대로라면 별 문제가 없을 테지만, 도널드 트럼프도 투표로 뽑혔으니 안심할 수 없다. 오히려 걱정해야 한다. 대중의 절대적 비율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신봉하는 것은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쌓아온 지성적 유산들이 더는 아니다. 그들의 결정은 SNS에 떠돌아다니는 질 낮고 오류투성이인 지식과 선동적 하류 담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통계상의 학력(學歷)은 높아졌는데 대중의 지적, 문화적 수준은 거꾸로 반지성적이 되는 역설적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전 시대에 비해 다양한 고급 문화예술을 즐기는 대중이 증가했으므로 잘못된 진단이라는 반론이 사방에서 제기될 것 같다. 언어를 가지고 그 반론에 답을 해볼까 한다. 애초에 언어와 문자를 기반으로 한 문학 예술은 물론이고, 음악(클래식), 미술 등 비언어적 장르의 예술도 결국은 언어의 세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언어로 해석되고, 언어로 치환되어 축적 되어야만 지식이 되고 지성으로 발전해 간다.

협애한 잣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적, 지성적 상황은 언어가 얼마나 풍요하고 빈곤한 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 얼마든지 가려낼 수 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은 『논리-철학 논고』에서 “나의 언어의 한계들은 나의 세계의 한계들을 의미한다.”고 썼다. 세계에 대한 이해는 절대 이해 주체의 언어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이해의 영역을 확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더 많은 언어를 활용하여 사유하는 것 밖에는 없다.

TV 연예프로그램을 살펴보면 낱말 퀴즈가 종종 등장한다. 이전 시대와 비교해 문명적 사물의 구성과 쓰임이 달라졌다지만 일상적 단어조차 모르는 경우가 왕왕이고, 사자성어 맞추기는 가관이다. 일부러 바보 놀이를 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 정도다. 한자어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한자를 모르니 어의를 파악하는 능력이 현저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

언어의 빈곤이 사유의 빈곤으로 이어지는 현상은 몇몇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 영역에서 심화되고 있다. 구성원 모두가 어느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그 단어는 사라진다. 그런 경우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한 언어공동체가 갖는 언어는 빈약해진다. 언어가 빈약해지는 것은 사유가 빈약해지는 것과 동일한 의미다.

위대한 문학 작품들은 작품이 만들어낸 사유의 깊이와 넓이로 평가를 끌어내기도 하지만 작품에 쓰인 풍성한 단어를 통해서도 명성을 얻는다. 현재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오는 책들이 보여주는 언어적 빈곤은 끔찍한 수준이다. 대부분의 책들이 보여주는 사유의 부박함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그런 책들을 대량으로 소비하고 있다. 이디오크러시는 이미 성장 환경을 얻었다.

사회 구조와 제도적 풍토는 결코 선지자들의 가르침처럼 선행하여 조성되지 않는다. 투표를 통해 형편없는 정치가들이 탄생하듯이, 대중의 현재적 욕구와 언어 수준에 의해 후행하여 만들어진다. 지적, 지성적 성장은 아는 것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모르는 걸 더 알려는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어려운 말을 피하고 혐오하는 사회라면, 이미 이디오크러시에 진입한 것이다.
이 기사는 광주매일신문 홈페이지(www.kjdaily.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kjdaily.com/1663496026584209028
프린트 시간 : 2023년 02월 04일 04:19:31